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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Development

루펜이야기


루펜이야기운명을디자인하는여자이희자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자전적에세이
지은이 이희자 (살림Biz,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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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루펜은 음식물을 건조시켜 비료 혹은 연료로 만드는 우리나라의 음식물 처리기이다. 처음 루펜을 본 계기는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 제공해주었다. 기계의 디자인과 성능에 놀랐고, 그리고 그런 기계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사장님에게 막연한 감동을 느꼈다. 이희자 씨가 책 속에서 솔직하게 반전(?)을 제시해주셨지만, 멋있는 방송 안에서 멋있게 자신의 발명품을 홍보한 그녀의 기백에 감탄했다. 홈쇼핑에서 무심코 보고 지나간 루펜에서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이희자씨의 발명품 루펜에 대한 솔직담백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사진만 많이 붙여놓는다면 루펜 광고집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루펜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땐 이 점이 마음에 안 들어 눈살을 찌푸렸었으나, 중간쯤 읽어가면서 그녀가 얼마나 이 발명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인생에 대한 상징물이 저런 멋진 발명품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도 쓸모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막의 모래로 벽돌을 만들었다는 프롤로그를 보면 살짝 질투심이 들기까지 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한 그녀의 독백은 무한한 자신감과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고객에게 허리를 숙이지만 자존심과 의지만큼은 꺾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 그런데 그 모습은 놀랍게도 재벌 집안 음식상을 1인용 식탁에서 다인용 식탁으로 바꾸어 설거지감을 대폭 줄여놓은 모습과 대등한 비중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그녀는 주부로 살면서 경영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그 뿐인가. 처음 부분부터 남편과 만난 이야기, 사주팔자이야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떡하니 등장한다. 물론 미국에서는 이런 구성의 책들이 이미 수차례 출판되었지만, 우리나라의 몇몇 고지식한 남성들 중에서는 이 책을 비웃는 사람들도 간혹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대목에서 그녀의 철저한 고집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글에서 쓴 대로 자신의 여성성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성이란 줄곧 단점과 수치의 개념이었다. 남성다운 패션이 여성정치계나 여성기업계에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여성성을 숨기려는 여성들이 있다. 그러나 요새는 남자도 모성기업을 만들어나가는 시대이다. 여기서 여성들이 제대로 된 여성성을 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여성으로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대한민국의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남성들이 갖지 못한 감각으로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좀 과장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훗날 우리나라의 여성 성공담의 중심을 차지하고, 시대가 직장의 예술성과 양성성을 더욱 강조하면 할 수록 이 책은 기업가들의 베스트셀러이자 필독서로 자리잡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여담을 약간 적어보겠다. 본인은 일하기를 좋아한다. 집보다는 밖으로 나다니길 좋아하고 돈쓰기보다는 돈벌기가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이 책의 흠집을 잡는다면 본인은 빛더미에 나앉은 어려운 시기에 호텔에서 오렌지주스를 사는 그녀의 모습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라면박스들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돈으로 스트레스받는 아이들을 위한 건강식을 더 세심하게 챙겨줄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그 대목에서 주부로서 배운 침착함과 여유가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문득 IMF때 술에 만취한 채 집에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이부자리 펴고 조용히 맞아주시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주 욱하는 성격을 지니신 어머니가 보여주시는 의외의 모습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여쭈어보니 당신께서 쓰러지거나 미쳐버린다면 집안이 무너진다 생각하고 버티셨단다. 결국 우리 가족은 그 시기를 버텨내고 지금까지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집안을 지켜낸 어머니의 그 단호한 눈빛을 글쓴이 또한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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