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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달이 당신을 먹는다

물방울관음 중에서

신현락

아무 때나 오는 해후가 아님을 안다
생사의 비단길을 뛰어 넘는 것은 간절함만이 아니다
간절함은 오직 간절함에 의지하는 것이어서
어느 생에선가 한 잎 이슬로
버들잎을 놓아버린 손목도 있었던 거다

 

 

 

일단 봄이라던가 달이라던가 밤이라던가 하는 단어가 나온다.

 

 시를 교육하는 센터에서 강사가 어떤 주제를 낼 때 시를 짓는데, 시인들이 된 이후엔 그 시절에 지었던 그걸 거의 그대로 잡지같은 데다가 응모하여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본 것 같다. 젊은시에서였나 신춘문예에서였나? 그래서 각기 다른 시인들이 시를 냈는데도 시의 주제가 많이 겹친다는 심사위원의 지적이 뇌리에 선명히 남았다. 심지어 '어떤 계절'에 책을 냈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 굳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을 지적하는 이유는, 그만큼 굉장히 눈에 띄기 때문이다. 중첩되는 단어와는 독립적인 주제를 다룬 시가 (그다지 특별한 이슈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눈에 뜨일 지경이니 말 다 했다. 처음에 이 책을 펼쳐볼 땐 월광탱고라는 시를 대충 접하고 내심 기대가 컸는데, 첫장부터 달이 하도 많이 나오다 보니 읽다읽다 지쳐서 정작 기대했던 그 시가 나왔을 땐 흥미가 많이 식어버렸다.

 

 

 

그러나 콜라나 뉴 키즈 온 더 블록 같은 시들은 과격, 파격과 함께 오직 윤리관을 전해야 한다는 시의 목적성을 철저히 깨뜨렸다.

 

 특히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늙은 사람이 목을 매단 엄숙한 장면에서 45구경 매그넘을(남자의 몸에서 총에 비유될 수 있는 게 그거 말고 달리 있을까?) 들고 옴으로서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어느 정도 경쾌하게 만들었다. 쇠파이프를 망설임없이 총알처럼 내리꽂는 그의 젊은 핏줄은 게임 캐릭터를 지켜보는 마냥 박진감을 안겨다주었다. 망설임없이 콜라캔을 입으로 물어뜯어 그 가장자리로 가정 내 지배자, 즉 아버지의 목을 따는 자식의 오이디푸스적인 역동감도 기억에 남았다. 시의 마지막 연에서는 최근 소설계에서 한창 뜨고 있는 후장사실주의자들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독창적이었다면 어땠을까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해외를 주제로 한 우리나라 시들이 워낙 재미에 있어서는 절망적이어서, 그럭저럭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시였다. 정훈교 시인이라던가 기혁 시인이라던가 황인찬 시인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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