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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강릉, 프라하, 함흥

황접가

내 사랑이
십자가처럼 무거울 때
춘천 향교 옆 은행나무 두 그루는
여전히 노란빛으로 환했다

열병처럼 환한
은행나무 두 그루 사이에
노란 길이 새로 열리고
그 길로 내 사랑도 얼른 지나갔으면
나비처럼 가벼웠으면
꿈꾸기도 했다

어쩌지 못하는 사랑에
고개 숙이고 걸을 때
혹은, 춘천 향교 옆 은행나무 두 그루 사이를
먼산 보듯 지나갈 때

휘파람처럼 쏟아져내리던
노란 나비떼

 

 

 

보통 남의 시를 읽다보면 시인의 고통을 액면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육하원칙과 인과관계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슬프다 기쁘다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인지조차 모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 잘 모르겠다라는 난해함보다는, 되려 호기심이 생긴다. 그의 사랑은 왜 꽃이 아니었을까? 그들을 꽃피게 하지 못했던 세계의 꽃은 어떤 것이었을까? 절벽 어딘가의 돌단풍으로 남게 된 그의 사랑은 그녀에게도 그렇게 남았을까?

그의 지나간 사랑 이야기는 사실 처절하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아버지로 점철된 과거, 시를 쓰기 위해 밥 먹을 돈을 벌지 못하고 단식하는 현재의 나, 굶주릴 때마다 떠오르는 북한 사람들 그리고 함흥. 그의 괴로움과 세상의 괴로움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소통하려는 그의 노력은 실패했다. 그러나 아픈 그대와 차창만 바라보는 나 사이에 펄펄 내리는 눈에 대한 비유는 아름다웠다. 섬과 육지 사이에서 물결치는 바다는, 절터에서 알을 까고 병아리가 되어 종종 뛰어다니는 번뇌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인은 강릉의 풍경을 기준으로 하여 '멀쭉이'서 그것들을 바라본다. 90년대에 30대이던 그의 청춘은 그렇게 흘러간다. 시집도 한 권 냈으니 그의 청춘은 고독하게 승리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스위치백식 기차를 다룬 시를 보면서. 내가 탔을 땐 그게 없어지고 마냥 긴 터널속만 뱅글뱅글 돌았던 점이 아쉬웠다. 지금 새로 개발한 기차에선 이 시인이 탔던 스위치백식 기차의 느낌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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