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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선명한 유령

인어

해변에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까.
암초 위에 앉아 젖은 머리를 말리며 듣던 노래
더는 들리지 않고

지상의 물기를 모조리 핥아먹는 여름
쨍쨍한 정오의 태양을 온몸으로 짊어진 채
인어 한 마리 눅눅한 아스팔트 위를 기어가고 있다.
목소리를 내어주고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
인어는 다만 제 꼬리를 고무로 바꾸었을 뿐.
힘차게 한번 펄떡일 힘도 없이 꼬리는
까맣고 끈적거리는 비늘을 녹이며 추진력을 얻는다.
칼날을 밟는 아픔을 참느라
고개를 숙인 인어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다.
인어가 앞세운 녹슨 카세트에서
기쁨과 축복의 노래가 가난하게 흘러나온다.
지느러미처럼 생긴 손바닥 위에 소쿠리를 얹은
인어는 지상에서 살기 위해 구경거리가 된다.

때마침 격렬한 소나기가 쏟아지고
인어의 곁을 쿵쿵거리며 걷던 다리들이
거품처럼 가볍게 사라진다.

또다른 해변이 멀지 않은 것일까.

인어는 고개를 들어 빗물을 마신다.
밍밍하기만 한 물에 땀방울을 섞어 염분을 섭취한다.
꼬리에서는 푸시시 열기가 꺼지며 김이 솟아오른다.
소쿠리 속 동전들이 미역처럼 번들거린다.

까끌까끌한 눈알들이 인어의 몸을 핥으며
곳곳에서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간단히 이야기해보자. 어려운 시들이 많다는 불평이 사람들 사이에서 많다. 그래서 조영석 시인은 이해하기 쉬운 시들을 썼다. 그러나 그는 제목을 이렇게 썼다. '선명한' 유령이라고.

 

 예전에 유행했던 단어가 진정성이라면 이번에는 선명성이라고 본다. 확장성이란 단어랑 같이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쓰는 말이다. 진정성은 아주 최근에 진심이라는 단어와 얽혀져 있다는 사실이 여러 권의 책들에 의해 밝혀졌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부제 또한 '진심을, 너에게'이니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어떤 느낌인지 파악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렇담 선명성이란 건 또 무엇일까? '미학'사상가 바움가르텐은 이를 미감적 빛이라고 하며, 명석함과 이해 가능성을 뜻한다 했다고 한다. 다시 '이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책을 펼쳐볼 때, 우리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도 이 시인처럼 회를 먹지 못했던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참돔으로 추측되던 게 머리째로 올라온 적이 있는데, 한참동안 그 머리를 바라봐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잘린 머리 속 눈동자가 움직인 것만 같았다. 나는 그게 너무 소름끼쳤었다. 그러다보니 생선의 가시가 목구멍에 박힌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게 양심이라는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마치 뾰족한 모서리가 있는 삼각형의 물체가 부딪치면서 닳아가듯, 나는 생선의 뼈도 잘 발라먹게 되었고 회도 곧잘 먹게 되었다. 주로 소주랑 같이 먹어야 맛이 있었다. 나중에는 무얼 먹는지도 모르게 되니까.

 시인의 미감적 빛은 너무나 심하게 자연스러웠다. 그의 눈에 비치는 제주도는 이제 낙타의 발굽이 갈라지는 딱딱한 아스팔트와 절규하는 햇빛밖에 남지 않았다. 그에게 봄밤은 사랑했던 여자에게 돈을 탈탈 털린 날이다. 그에게는 전쟁이나 전쟁같은 무언가로 두 다리를 잃고 다리 대신 검은 고무를 질질 끄는 걸인이자 장애인이다. 그의 선명함은 세상의 온갖 먼지와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분비물에 찌든 냄새다. 확실히 20대 파릇파릇한 청년 시절 IMF를 겪은 사람이라면 느낄 법한 선명함이다. 진정한 실천문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끼게 된다.

 

 P.S 건담으로 인해 알게 된 페친이 이 형(?!)과 알고 지낸다고 한다. 덩치가 크셔서 절대 시인이 안 되실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문인들에겐 헤밍웨이라는 좋은 사례가 있지. 그나저나 세상 참 좁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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