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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반대하며

눈물보다 웃음에 대해 쓰는 것이 더 낫다.
웃음이야말로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니까.

 

역시 이 문인도 나이가 든 남자구나하고 느끼는 대목들이 많았다. 난 여자들만큼이나, 아니 여자보다도 더 남의 뒷담 잘 까는 남자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남자들은 뒷담을 까기를 꺼려한다는 이 사람의 말은 어떤 미사여구로도 가려질 수 없을 것 같다. 아, 이 사람은 보수로구나. 그런 지워질 수 없는 느낌이 확 내리덮치는 느낌이랄까. 하기사 어떤 여자에게 화약을 터뜨려서 샅까지 모조리 불에 그을려버린 남자 이야기에서 징조가 보이긴 했다. 그 남자보다 더 잘 생긴 남자를 택해서 그런다고 여자 탓을 하더라. 기가 막혀서 ㅋ

여성에 대해 좋게 나온 구절도 많다. 벼룩이 뛰는 패턴에 관해 연구한 과학자라거나 여성 연금술사였던 미리암에 관한 게 그 예이다. 미리암은 성경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미리암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모세의 잘못을 지적했다가 하느님의 분노를 사서 문둥병에 걸렸다고 쓰여 있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엔 똑똑해서 제거당했던 게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정말 우리가 도달하는 곳이 꿀의 땅일까?'라는 말을 했다거나. 여러모로 모세로서는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겠지.. 가봤자 어차피 중동이니;

아무튼간에 저자가 너무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지식이란 것도 조금씩 틀린 게 있으셔서 거슬리고(책 낸 후에 수정하셨지만 꺼려지는 건 막을 수가 없다.), 개인적인 의견은 정말 누가누가 이쁘고 추한가에 대한 잣대 재기? 이런 걸 보고 있는 것 같아 참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페미니즘이 늦게 들어왔다나? 그런 핑계를 대면서 은근 여성에 대한 비판이 심하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쿨하게 에세이 쓴다고 평판 자자했던 미국인 인간이 마지막 부분에 우리나라 승무원 여성을 깠던, 인종차별에 성차별까지 쌍끌이해서 나를 충공깽으로 몰아갔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그 책 페미니즘적인 책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었다.) 왜 항상 이런 사람들은 지뢰를 앞부분이 아니라 뒷부분에 깔아놓는가. 앞부분에 있었음 보지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작가는 자신이 마초라는 걸 눈치채진 못했을 것 같고 책을 처음 만든 편집자의 소행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들 중 두 명이나 추천한 저자라 열심히 읽었는데 실망이 크다.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하는 그 책은 볼지 솔직히 의문 ㅋㅋㅋ

 

우리가 논리적이라면, 우리의 운명은 절대 알 수 없다는, 모든 추측은 임의적이며 현실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는 증거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이 걸려 있을 때 인간은 논리적인 경우가 매우 드물다. 매번 극단적인 태도를 택한다. 그래서 성격에 따라, 우리 중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기서 살 수 없다고, 종말이 가깝고 확실하다고 즉시 확신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현재 처한 삶이 힘든 만큼 구원받을 가망성이 있고 구원이 멀지 않았으며, 믿음과 힘이 있다면 집과 사랑하는 이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 이 두 부류는 그렇게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불가지론자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이 기억이나 대화 상대와 시기에 따라 일관성 없이 두 극단 사이를 떠돌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구절만 읽으면 다 읽은 셈이라 했으니 안 볼 것 같다. 차라리 노벨문학상 탔던 엘리 위젤의 나이트란 소설이나 보려고요...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은 솔직히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추천한다. 다른 책들보단 그거 읽는 게 백번 낫다고 본다;;; 리뷰 쓴 거 다시 봤는데 심지어 이 책이랑 메시지도 똑같네 ㅋㅋㅋ 왜 나는 이 책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까지 기대했을까 ㅠㅠㅠ

그렇다고 모든 글이 싫은 건 아니다. 글이 꽤나 짧지만 고루하고 중후하다. 보수이지만 길이 잘 든 골동품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한 문장 한 문장이 묵직하다. 나 심지어 첫글부터 이해를 못 했딘. 왜 가족의 법칙에 따라서 가장 아끼는 안락의자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옮겨지면 불편한 건데. 아니 아무데나 있음 어때. 글쓰는 자리까지 안락의자를 옮겨야 되서 그러니? 어떤 분에 의하면 안락의자는 고정된 가구 느낌이라 한다. 가구 위치만 바꿔도, 집 인테리어 다시한 느낌 같은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고. 안락의자는 특히 각도가 생명이라는데, 집 채광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진다 한다.

사람이 항상 행복하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슬픈 일은 피하면 되고 즐거운 일은 찾으면 된다.
물론 사회적인 행동에서는 좀 다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차별을 당했다면 기분이 나쁘다. 그렇다면 심호흡을 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그래도 잘못이 없다면 내가 차별당한 시스템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두 번 다시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나를 차별했던 사람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남탓을 하면서도 계속 그 사람과 같이 있기까지 한다는 건 벙어리에 장님이요 자신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일과 다름없다.

사실상 지금 상황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와 헤어졌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건 거리가 멀테니 올 수 있을리도 없다.
연락할 수단 다 차단했고.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면 난 정말 사람보는 눈도 없고 빈틈도 많다.
그에 대한 장점은, 약자를 우습게 보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
이래서 눈을 낮출래야 낮출 수가 없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사람은 깐깐해야 한다.
저자도 좀 깐깐한 편인데 그 예 중 하나가 안락의자도 있지만, 여러모로 또 보인다. 신기하게도 저자는 이 짧고 많은 글들 중 했던 말을 반복하는 실수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어지간히 같은 말 반복하는 걸 싫어하시는 듯한데 이건 나랑 같은 듯.

 

루치아에 대한 음모를 그만두라고 요청하자 돈 로드리고는 그녀를 설득해 자신의 보호 아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의 보호라고!' (크리스토포로 수사가) 소리쳤다. 그리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당당하게 체중을 오른발에 싣고, 오른손은 허리에 얹고 왼손은 들어올려 검지로 돈 로드리고를 가리키며, 타는 듯이 강렬한 눈빛으로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당신의 보호라고!'" 이제 수사는 사라지고, 수사의 기괴한 유물만이 남아있다.

 

 


죠타로 형님이 왜 여깄음?!

'렌초의 주먹'이라는 에세이에 나오는 대목이다. (죠죠 5부 배경은 이탈리아다.) 만초니의 소설 약혼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루치아를 둘러싼 렌초와 돈 로드리고의 대결이 그려지고 있는 듯하다. (죠죠 1부를 연상시킨다.) 처음 작품이 나온 시대가 아무리 옛날이라도 죠죠에서 나오는 과장된 포즈는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이 과장된 동작을 저자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가톨릭 리얼리즘을 결합시킨 것 같다 말한다. 즉 프로파간다의 목적을 두고 문학적 기교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죠죠가 디오라는 절대악과 대결하는 형태를 띄고 있는 권선징악의 문학인 이유가 여기 드러난다. 두 가지 격정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떠들어 댈 때 이런 서술적 해법이 나온다 하는데, 이는 격정을 싫어하는 데서 나온다 한다. (이는 3부 첫부분에서 죠타로가 스탠드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분노를 억누르는 데서 충분히 표출된다.) 죠죠의 작가는 확대경을 들고 인물들 하나하나를(심지어 곤충의 싸움까지) 섬세하게 담아냄으로서 끝이 없는 작업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분명 레비가 쓴 이 글이나 만초니의 소설을 읽었음이 틀림없다.

 

알다시피 유대인에게는 하느님의 '진짜'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책에 인쇄되어 있는 경우라도 읽을 때는 동의어로 대체해야 한다. 히브리어 외의 언어에서 일반적으로 '신'Dio에 해당하는 단어로 발음하는 것은 허용된다.

 

 



자 여기서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 나오는 디오의 대사를 다시 보죠.

 

그런데 원래 고대 이집트어에서 nitro와 natro는 같은 말이었다.
고대 이집트어의 복잡한 문자에서 모음은 불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자음 ntr은 일반적으로 소금처럼 보이는 하얀 가루를 가리켰는데, 이탈리아어에서는 여전히 '살니트로'라고 부르고 다른 언어에서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살레 디 피에트라' 즉 돌의 소금이라고 부르는, 오래된 벽에 생긴 하얀 가루나, 또는 이집트인들이 특정 채석장에서 캐서 미라를 만들 때 사용한 하얀 가루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축약어는 잘못 축약하면 이렇게 위험합니다. BL이라던지, NTR이라던지. 요새는 제대로 질소는 N으로 나트륨은 Na로 축약하지만 이집트에선 왜 하필 그렇게 모음을 줄였을까요.

 

그 기원에는 최소 2천년 동안 태국과 수마트라에서 수입되었고 향기를 내는 동시에 치료를 위해서도 사용되었으며, 향이 나는 수지인 벤조이노가 있다. 치료를 위해 사용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단지 기분 좋은 향을 가진 물질이 '좋은 작용을 한다'는 위험한 추론 때문인지도 모른다. (...) 그들은 벤조이노를 '자바 향료'를 의미하는 '루반 자비'라고 불렀다. 그것이 진짜 향료가 아니고 자바에서 온 것은 더더욱 아닌데도 말이다.

 

 

 


속속들이 놀라고 있다. 자비가 이런 뜻이었나?
하기사 도련님이 건담 인물 중에서 샤아 다음으로 잘생기기는 했지.

 

메탄에 이어 '에테르'에 뿌리를 둔 에탄이 나왔고, '첫번째'라는 뜻의 그리스어 '프로토스'가 약간 왜곡되어 프로판이 나왔다. 또 '라코타 치즈'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에 어원을 둔 '부티르'를 뿌리로 부탄이 나왔다.

 

 

 


제가 프로토스를 매우 좋아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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