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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꿈꿀 권리 오늘 바다 앞에서 술병을 들고 있는 나는 어제 했던 이야기를 지금 또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명상은 변덕스런 것이며 변덕 그 자체이기도 하다. 더구나 궁극적으로 명상의 우발성을 최대한으로 북돋우는 것은 다름 아닌 가장 강력한 작품인 것이다. 가장 개성적인 작품은 개성적인 해석을 자아낸다. 페친하고 전에 얘기했는데, 나는 지젝이 사회학자라 생각하지 철학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자의 글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유명한 분들의 글들은 몇 개 훑어보았다. 그들의 글은 에세이같으면서도 소설 같고 시 같고 결국 모든 장르를 합친 듯한 그런 웅장함이 있다. 명화와 그에 대한 설명이 쭉 이어지니 핸드폰을 앞에 두고 그림을 검색해가며 보시길 바란다. 책 자체가 전반적으로 표현력 맛집이라 할 만큼 맛깔난 설명이 펼.. 더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 다시 개국 초의 한 장면, 세자 책봉,공신 책봉이 끝난 다음 어느 날, 왕세자와 왕자 들,개국공신들이 한데 모였다. "문하좌시중 배극렴 등은 황천후토와 송악성황 등 모든 신령에게 고합니다. ... 무릇 우리 일을 같이한 사람들은 임금을 성심으로 섬기고 친구를 신의로 사귀어야 할 것입니다. 저만 잘 되기 위해 해치지 말며, 제 이익을 위해 서로 시기하지 말며, 의심을 품지 말며, 뒤에서 미워하다 만나서는 좋은 체하지 말며, 겉으론 친한 척하면서 속으론 간격을 두지 말라! 우리는 자손들에게까지 대대로 이 멩세를 지켜나갈 것이다. 만약에 언약을 깨는 자 있으면 신이 반드시 벌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뒷날의 격돌을 생각해보면, 이날의 맹약은 마치 그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남자들은 참 여러 사람들이.. 더보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공양왕, 울면서 보위에 오르고, 울면서 물러난 왕이다. 그런 탓에 바보스럽고 겁 많은 왕이란 이미지가 씌워졌지만 과연 그럴까? (...) 나름의 논거를 대고 논리가 부족하면 감성에 호소하고 혹은 못 들은 척하면서, 필사적으로 버티는 왕이었다. 적어도 1980년의 최 아무개와는 달랐다. 최 아무개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최규하라고 한다. 나도 잠시 헷갈렸는데 페친이 알려주었다. 대통령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른다는 그 분이라서.. 읽는데 의외로 몰랐던 기록들이 많다. 까먹은 건지도 모르겠으나(...) 이성계가 젊은 시절 싸웠던 원나라 장수의 이름은 역시 여기서 처음보는 것 같다. 만화책이라서 그런지 술술 읽힌다. 진작에 볼걸.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게 고려는 뭔가 찜찜한 애가 한 명 있으면 외교를 보내 버리더라... 더보기
우리 몸이 세계라면 담배회사의 마케팅 전략은 고객의 특성에 맞춰 세련된 논리, 아름다운 이미지와 함께합니다. (...) 담배회사의 전략을 보며, 고정희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꽃은 누구에게나 아름답습니다. 호박꽃보다야 장미가 아름답고요 감꽃보다야 백목련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우아하게 어우러진 꽃밭 앞에서 누군들 살의를 떠올리겠읍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의 적이 숨어 있다면 그곳은 아름다운 꽃밭 속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이라면 대부분이 담배일 것이다. 보다보면 동방프로젝트의 사이교우지 유유코가 생각난다. 하기사 일본에서는 '벚꽃나무 밑에 시체가 묻혀 있다'는 괴담같은 속담이 있기도 하다. 행운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연찮게 책이 현대의 이슈들을 많이 다루게 되었다. 일단 전염병이 가난한 사람들.. 더보기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개의 신 김소형 신이라면 개를 응당 사랑하겠지 천국에는 동물이 없다는 말에 흔들리던 종교 사이 사랑하니까 데려간 거겠지 이제는 기도하지 않겠지만 먼저 떠난 동물은 주인을 많이 기다린다고 그 말을 듣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개의 신이라면 사랑해야지 그러지 않겠냐고 뙤약볕에 앉아 가장 먼 은하의 개미에게 물어보던 초여름 나는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는 사람이다. 20대 때부터 어렴풋이 그걸 느꼈다. 싸돌아다니면서 겪은 수많은 모험담(?)은 그렇다 치고 계단에서 굴러 앞니까지 조금 깨진 적 있는 사람이 무슨 강아지를 챙긴단 말인가. 외로워하며 새벽 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난다고 쏘다니는 내 방랑벽(?)을 고치려 보다못해 어머니는 숱하게 내가 도망다니던 소개팅은 접어두고 강아지를 사오셨다. 강아지를 두 마리.. 더보기
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 그리고 로마 초기 역사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를 보면, 덕성 높은 루크레티아는 당시 왕가의 잔혹한 왕자에게 강간을 당한 다음 발언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 발언 기회는 강간을 저지른 자를 비난한 다음 자살하겠다는 선언을 위해 주어진 것이었다(최소한 로마 시대 저자들은 그렇게 기술했다.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쓰디쓴 발언 기회조차 박탈이 가능했다. 이 성폭력 사건이 고결한 여성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그림 소재로 굉장히 많이 쓰였었다. 물론 실제로는 더 비참했다. 리비우스 로마사에 나오는 내용인데, 계속 반항하면 루크레티아와 남성 노예를 함께 살해한 뒤 간통했다는 누명을 씌우겠다고 가해자가 협박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말에 굉장히 공감하는 바이다. 나.. 더보기
굿모닝팝스 vol. 345 영화 미스비헤이비어는 1970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스 월드 생방송에 잠입해 성적 대상화와 성 상품화 반대를 외쳤던 샐리 알렉산더와 조 로빈슨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화는 당시 전 세계 신문 1면을 휩쓴 이 사건을 여성해방운동의 불씨를 당긴 허스토리로 기록하면서, 동시에 역사상 흑인 최초로 미스월드 왕관을 거머쥔 제니퍼 호스텐을 조명한다. 반아파르트헤이트 시위가 펼쳐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제니퍼 호스텐의 행보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이겨낸 성공한 흑인 여성으로 상징된다. 여담인데 일본인들이 미인으로 생각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꼽는 인물 중 하나가 키쿄우라고 한다. 굉장히 의외라 생각했는데, 설정도 그렇고 거의 죽어가는 여성처럼 그려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관에서는 이누야샤가 가장 나쁜.. 더보기
세상의 모든 최대화 항구의 겨울 항구의 겨울, 항구한 겨울은 뺄셈이 불가능한 세계. 마냥 쌓이기만 한다. 쌓여서 오직 잊힐 뿐. 항구의 겨울, 항구한 겨울 앞에서 우린 입을 다문다. 함구한 하늘이 속으로 울고 내리던 눈이 녹는다. 내리던 눈이 녹다 말고 공중에서 춤을 춘다. 눈의 속도는 늘 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항구의 겨울, 겨울의 항구는 공중에서 천천히 짓이겨지는 춤을 마냥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 자신을 밟고 가는 연인들을 기습적으로 미끄러트리고는 항구의 겨울, 한 구의 시체라고 읊조리면서 유쾌한 관객들처럼 웃어 보이기도. 그래도 웃음이 뺄셈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믿으며 그 믿음을 얼린다. 항구의 겨울, 항구한 마음. 몇 해 전에도 분명 비슷한 걸 얼렸었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부두에 모여 떨고 있던 선박들의 빈자.. 더보기
찬미받으소서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인 달과 별들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하늘에 달과 별들을 맑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지으셨나이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형제인 바람과 공기로, 흐리거나 맑은 온갖 날씨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피조물들을 길러 주시나이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인 물로 찬미받으소서. 물은 유용하고 겸손하며 귀하고 순결하나이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형제인 불로 찬미받으소서. 주님께서는 불로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불은 아름답고 쾌활하며 활발하고 강하나이다. 자기가 걷고 있고, 그 앞 반경 50m 앞마다 커피숍이 있었음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난 생전 그런 야만스러운 소리를 처음 들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열심히 그 다음 시집을 내주세요. 읽고.. 더보기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나는 오쇼 라즈니쉬의 섹스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흰 바탕에 짙은 회색 글씨로 책등에 세액스으라고 커다랗게 적힌 책이다. (...) 저자는 힌두교 쪽의 영적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으로 특히 섹스 자유주의자로 이름나 있다. (...) 그의 주된 주장은 인간은 섹스를 너무나도 억압하며, 일단 섹스를 풀어놓는다면 그 풀림으로 행복의 궁극적인 통로인 명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명상은 쏙 빼버리고 섹스에만 관심을 둔다며 그는 툴툴거린다. (...) 인간은 섹스를 너무나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언제나 섹스에 골몰한 나머지 성별부터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거 굉장히 공감가는데, 평소 굉장히 섹스할 여자 만나는 데 골몰하는 남자가 한남인 경우가 많다(의외로 남자에게 관심없는 듯..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