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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

동거하던 전 애인이 나와 싸우고 나서 내게 집을 나가라고 했을 때, 나는 지금 당장 갈 곳도 없고 네 요구는 부당하므로 그럴 수는 없다고 버텼다. 그러자 전 애인은 고양이를 끌어내서 때리기 시작했다. 신뢰하던 존재로부터 갑작스럽게 쏟아진 생에 한 번도 겪지 못한 폭력에 고양이는 꼬리가 몽둥이만 해져서는 털을 세우고 소리를 질러댔다.

 

 

 

 

청호동 고양이라는 노래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다. 고양이가 있어서 돌을 던지려 했는데 임신했기 때문에 돌을 던지지 않는다는 아이 이야기이다. 나는 궁금하다. 왜 그 이야기를 어른들은 감동적인 이야기라 생각하며 동요로 널리 알렸을까?

 

 네거티브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베푸는 것이라 친다면, 그 아이는 '임신한 엄마' 고양이에게 자신이 더 베푸는 사람으로 보이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누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건 자신이 더 가진 사람, 더 위에 있는 사람이란 걸 어필하려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신한 고양이 말고도 다른 고양이들에겐 돌을 던져도 된다는 소리일까? 수컷 고양이는? 임신하지 않은 암컷 고양이는? 인생이 성공 혹은 실패로 나누어져 있다면, 나라는 암컷(고양이)은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뜻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북한이 핵을 던지냐 마느냐 걱정하기 전에 자신의 후손들이 맞아 죽느냐 자살하느냐를 가지고 잠도 못 자며 고민한다는 걸 염두에 두란 말이다 좀.

당신들은 왕년에 그런 폭력 겪어본 적이 없다고? 지랄시나이데 ㅋㅋㅋ 얼마나 고집이 쎘으면 옆에 있는 친구들이 너에게 폭력당한 적 있다고 상담도 안 해본 거니? 난 내가 겪은 것도 힘들었지만 여러 군데에서 당한 폭력 사례들이 버거워서 잠도 설칠 정도로 힘들었었다. 폭력은 너네 가족, 너네 형제자매, 너네 친구들, 너네 애인들, 너네 배우자가 겪을 수 있습니다 닌겐들아.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내가 당신이 인터넷 게임을 들먹이기 전에 알려주겠다. 요즘 인터넷 게임 하는 애들 별로 없다고 할 수 있고요. 그저 우리 어릴 때 참교육시킨다고 후드려패는 선생들이 없어져서다. 절대 강자가 없고 법이 없을 때 노예들이 하는 게 뭐겠는가? 약자 골라내서 줘패기밖에 없지.

이제는 시위를 하러 서울로 가는 일이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 혼자 다른 사람들을 동지로 알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동지로 보지 않는 곳에 뭐하러 가나.

사실 이건 내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차별로 시선을 옮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출할 때 옷 하나에도 시선이 이상하게 가기 때문에 챙겨야 하는 건 물론이고, 일할 때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감시하는 사람들이 천지고, 무엇보다 성희롱과 사랑고백을 분간 못하는 인간들이 판을 치는 동네에서 난 하나하나 불편한 시선을 던졌다. 확실히 박근혜 정권 때엔 뉴질랜드에 가서 사는 게 어떻냐며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으로 들어서면서 그들은 점점 입을 닫게 되었고 그렇게 시시때때로 틀던 뉴스도 보지 않게 되었다. 확실히 정권 교체는 중요한 듯하다. 하지만 이미 전반적으로 평온(?)을 되찾은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양보하기가 싫은 것이다. 촛불집회에 나갔던, 여기 사는 사람들보다 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여성으로서 나의 입장을 실생활에 맞닥뜨려보고 싶다.

뭐 그렇다고 내가 유달리 특별한 인물은 아닌 듯하다. 다른 남성들이 항상 나에게 세뇌시키고 있듯이, 나는 그렇게 몸집이 좋고 힘이 센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지니고 있는 근력에 비해 외양은 말라 보였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그래서 심지어 여성들에게조차 백치미가 있다느니, 얼빵하다느니, 어릴적의 자신이 생각난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듣는다. 나하고 한 번이라도 같이 일해본 사람들은 내 완력을 아니까 절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지만. 최근 국가대표 운동선수라는 소릴 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들었던 소리들과 차별들을 서서히 공개하고 싶다.

일단 이 잡지의 메인인 인터뷰가 남자 2, 여자 2명으로 구성된 게 놀라웠다. 그 중 한 분이 살짝 주제랑 엇나가서 이야기하는 측면이 강하긴 하지만, 일단 이런 매거진에 나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생각한다. 남자 세계에선 '넌 남자 놈이 무슨 고양이를 그렇게 좋아하냐?'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인 게 남자 집사들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고양이는 제가 키워보지 않은 동물 중 하난데, 제 개가 짖으면 덩치가 커도 꼼짝을 못하고 도망가더라. 애완동물 계열에선 약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사회에서 취직할 때 회사내에서 여성이랑 사귀면 일정 정도 공격받는 것과 비슷한 듯.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정말 심각하게 고려해보지 않았던 게 몇 개 있다.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아이스께끼는 성추행이었다.
2. 현실을 말하는 게 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이 될 수도 있었다.
3. 문학소녀란 단어는 성차별 발언이었다.
이런 걸 보면 내가 나이들었다는 걸 느낀다. 치과에 갔는데 잇몸에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을 듣는 때처럼.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는 순수한 마법소녀가 아니라서 싫어한다고 누군가 말한다. 대체 순수한 마법소녀란 무엇인가. 요술공주 밍키처럼 트럭에 치이지 않고, 나노하처럼 배신의 드라마를 겪지 않으면서도 마법을 부리는 소녀가 과연 존재할 것인가. 아님 레미처럼 장렬하게 희생되어야 마법소녀인가.

 

 

말놀이 위주로 나와서 중요하진 않은 것 같지만, 유희왕이란 게임에서도 고양이가 나오는 카드가 등장한다(...) 여러가지 글이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시였다.


유희왕 1

권창섭

끝말잇기를 하자면서
형용사만을 말하는 당신은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고 싶은 걸까
아니면 어떻게든 지고 싶은 걸까

"예쁘네"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네루다" 같은 시인의 이름을 말한다거나,
그래서 "다르지"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나 역시 "지겨워" 같은 형용사로 답하는 것은,

겁나는 일인 것 같다
마치 그것은
단어를 생각하지 않고, 단어를 생각하지 않는 일들

마치 그것은

"빨리"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리버모륨"이라고 답하는 것
"느리게"라고 말하는 당신에게는
"게르마늄"이라고 답하는 것
빠르든 늦든 우리는 끝날 것이고,
새로운 놀이들을 생각하자

단어를 생각하지 않고, 단어를 생각하는 일들
"하모니"와 "하모니카"
"미스터"와 "미스터리"
"그레이"와 "그레이드"

단어를 생각하고, 단어를 생각하는 일들
"자몽"에 "이슬"
"만수"와 "영자"
"오욕"의 "세월"

무수한 핑계들을 댈 수 있다
웃자, 아니다, 지자,
울자, 아니다, 이기자,
말들은 끊임없이 돌아오고

필요와 피로와
쓸모와 몹쓸을
돌고 도는 일은 너무나도
귀엽잖아 귀엽지 않아

마치 그것은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생각하는 일,
당신을 생각하지 않고, 당신을 생각하지 않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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