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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ery&Horror

폐허를 보다

"거봐, 아주머니. 밀가루를 너무 묻혀! 50그람짜릴 75그람으로 만들면 우린 뭘 먹고 장사하나? 하, 이거 참! 다시 좀 잘 해봐요!"
50그램짜리 핫도그는 60에서 70그램으로 만들어야 한다. 냉동실에 들어가 수축되는 것을 고려한 그램 수다.

 

 


근무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동료와 충돌이 잦았다. 그러다 내 입에서 불쑥 '아주머니'라는 말이 튀어나왔는데, 그 동료 분이 갑자기 폭발할 듯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 좋은 동료분들은 반쯤 농담삼아 '아주머니니까 아주머니라고 하지.'라고 했지만 나는 얼른 사과했다. 인격에 모독을 줄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속으론 굉장히 부끄러웠다. 노동운동과 친하진 않았지만 그들을 아주머니라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내가 그들을 하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학을 나왔는데도 나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었다. 인권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는데도 나는 사람을 여전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변할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새 과하게 성공적인지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높은 자리에서 뽐내고 서 있다가 언젠가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보단, 죄책감을 느끼는 것보단 백배 낫다. 아주머니란 단어는 아직도 나한테 그런 의미이다.

결론적으로는 잘 봤다. 공장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솔직히 실렸다. 여자는 공장노동자에서 더 밑바닥으로 가면 몸을 팔게 된다거나, 남자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나서 쉬는 시간에 밖에서 빨리 노상방뇨하고 온다거나. 아주 가감이 없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명심할 게 몇 가지 있다.
1. 일단 등장인물들이 많이 죽는다.
2. 솔직담백한 이야기라 죽을 때 똥오줌이라거나 이물질 묘사가 나온다. 물론 선정적인 장면도 나온다.
3. 죄다 결말이 불행한 편이다.
혹시나 이런 류의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신중을 요한다. 하지만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겪는 위험한 일이나 소위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긴 하다. 난 이런 장르를 좋아해서 열심히 읽긴 했다(?)

폐허를 보다 처음 집어든 날은 진짜 무슨 날이냐;; 싶을 정도로 혼돈 파괴 망가의 나날이었다. 지진난 건 둘째치고 온갖 트러블에 재고조사에 심지어 조용히 있던 직장동료가 임금 오르면 너 해고되는 거 아니냐고 트집을 잡았다. 평소 같으면 이어폰 끼고 음악 이빠이 틀고 못 들은 척 하는데 옆자리에선 동성이 섹드립하고 아;;;  

 

 


 내가 20일날 이어폰 사가는 거 까먹으면 인간 말고 개 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었다.


동료 직원의 질문은 그냥 얼버무렸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단축 되는 거야 덕질할 시간이 많아지니 그냥 그렇다고 친다. 그러나 해고라. 임금 오르는 그딴 걸로 직원들 목을 치는 직장이면 그냥 서점 직원이고 뭐고 안 할 거다. 솔직히 음식점 서빙 알바해도 이거보단 더 많이 번다.

이 일 뿐만이 아니다. 회사 내 전화받는 곳에 잠깐 일 있어서 들렀는데 전화기에 조그맣게 폭언폭설, 성희롱이란 글자가 쓰여 있고 옆에 뭔가 번호가 적혀 있다. 아니 사람들아 왜 여기다 전화해서 그런 짓거리를 하세요...? 이인휘 씨 소설 보다보면 이렇게 회사의 온 군데가 신경쓰이는 현상이 생겨난다. 키니나리마스! 그러나 감정이입이 많은 나로서는 이 책을 읽은 날이 생각 많고 머리속 복잡한 날이었다. 내 앞날에 대한 생각도 많이 났지만, 그보다는 진지하게 세상의 비열한 모든 사람들에게 화가 나지 않았었나 싶고. 그래어  폐허를 보다는 좀 빨리 읽었다 ㅠㅠ  내용은 너무 이거 너무 내 현실과 겹쳐서 너무 벗어나고 싶은 부담감이 있음;; 뭐 이 책 뿐만 아니라 이인휘 씨의 소설 자체가 페이지 터너이긴 하다.

좋은 보스는 없다.
직장 동료는 친구가 될 수 없다.
회식은 최대한 피해라.
한 직장에서 6년차 짬밥 먹으면서 배운 직장생활 잘하기 3원칙인데 이 책에선 왜 그걸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다고 본다. 물론 소설의 '나'는 히키코모리인 나와 달리 사교성이 있어서 직장 동료 '중에' 친구가 있다(...) 은근 부럽기도 하다 ㅠㅠ

시흥 칼바위가 나오는데 진짜 내가 정확히 여기 살았었다. 나중에 가보니 재개발하느라 싹 다 헐었더라. 그래서 완전 저주받은 흉가의 느낌 나는데 예전부터 분위기 열라 이상하긴 했었다. 거기 살았던 사람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흉물스런 동네는 좀 헐어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 20년 전부터 중딩들 피어싱하고 다니고. 근데 나도 거기 초등학교 전학갈 때까지 놀림받았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뻐드렁니라거나 남자같은 이름이라거나 나중엔 그것도 질리니까 심지어 김씨라고 놀림 ㅋㅋㅋ 김에 싸서 먹느냐며 ㅋㅋㅋ 집이 좀 허름한데 옷은 맨날 고급 원피스 입고 다니고 맨날 글 쓰고 그림그리는데 어디 내기만 하면 상을 받고 다니니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래 뭐, 나도 살면서 지금까지 초딩때 상을 그렇게 많이 받았다는 사람은 못 봤으니. 그래도 그렇지 왕따시킬거면 괴롭히지 말고 조용히 무시만 하세요. 님들의 언어나 행동이 사람 죽일 수 있다. 20년 지나고 우연히 뻐드렁니 집어넣는데 성공했는데 아직도 아랫입술로 윗니 집어넣는 습관이 생겼다. 입 속 다 헐고 이빨도 좋지 않은데 아직도 이런다. 최근에서야 정상적으로 웃을 수 있고. 그리고 아직도 사회관계 안 좋은 건 어떻게 보상할거니?

 

왜 이렇게 이인휘 씨의 소설이 끌리는가, 난데없이 전권 돌파를 하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다른 작가와는 달리 직접 만나서 그러는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지만 따져보면 천명관과의 만남이 나에겐 좀 더 인상깊고 친숙했다. 외모 탓인가?에서도 역시 마찬가지고(...) 책을 별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도 만나고나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저 그 분의 책 한 권을 처음 보고 끌렸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글은 겉으로 보기엔 단순하지만 퍽 깊고 순수한 면이 있다. 사인회를 하거나 강의를 하는 기존 소설가들에게선 이미 느낄 수 없는 친근감이다. 복잡하진 않지만 알 수 없는 몰입도가 있다는 그 자체에서 깊은 맛이 우러난다고 할 수 있다.

왠지 독서모임할 때 누가 이인휘씨 까면 무라카미 류나 아스카 때처럼 아니 제 최애한테 왜 이러세요 날 모욕하시는 건가요 이런 말이 내 목구녕에서 튀어나갈 거 같다. 그냥 존나 가만있어야 겠다. ㄷㄷㄷ

요번에 이분 책 전권 다 보면 삶창 도서관에 있는 책 다 재패하려 준비중. 기대하시라! 요샌 주로 시집을 편찬하고 있는 출판사로 노동계와 관련된 글들을 주로 출판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을 번역했다. 국내소설파에 삶창이라니 너 무지 마이너 아니냐!라고 말씀하셔도 난 어차피 마이너이고 인기 끌려고 블로그에 리뷰 쓰는 게 아닌지라.

 

 

"스님 간밤에 제가 꿈을 꿨는데 법당은 무사다, 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스님이 걸음을 멈추고 설악산을 올려다봤습니다.
"그것 참 좋은 꿈을 꿨습니다. 법당은 본래 부처의 몸이라고 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사를 한자로 풀어보면 삿됨이 없다는 뜻인데, 몸에 삿됨이 없다 카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주 좋은 꿈입니다."
(...)
"형은 감상주의자야.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지."
그가 막걸리를 마시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새라는 노래.

 

 

 


일본에서 까마귀는 카라스라 한다. 烏(カラス) 새는 토리라고 한다. 鳥(とり)


 왜 한 획이 부족하냐면 중국인들이 새라는 상형문자에서 눈을 뺐기 때문이다. 고대어를 일본 사람들이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히라가나가 아니라 일부러 가타카나로 부른다. 온 몸이 검은 까마귀는 눈까지 검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눈이 없는 새로 친다고 했다. 이는 맹인을 연상시키는데, 그들은 일본에선 악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농경 신화에서는 날개가 여덞개 달리지 않았나 추정되는 야타카라스가 난폭한 신들을 피하면서 천황을 천혜의 땅으로 인도해 주었다고 한다. 고구려에서도 삼족오는 까마귀가 아닌가 해석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까마귀라 하여 그닥 불길한 새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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