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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ery&Horror

주간경향 1267호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폭력적 상황에 직면할 때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못하는데, 특히 전혀 그럴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대로부터 상상도 하지 않은 폭력, 예를 들어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보편적으로 예측되는 행동과 달리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실제 대부분의 피해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저항 능력이 순간적으로 마비되는 '긴장성 부동화' 상태에 빠진다. 긴장성 부동화는 사람을 비롯한 동물이 긴장, 공포 등으로 몸이 굳어 꼼짝도 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 특히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 피해자의 경우 더욱 적극적으로 설명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타자'가 가해자일 경우, 여성 혹은 청소년 피해자는 긴장성 부동화에 빠지게 되고, 그 상황에 대한 내적 합리화와 함께 분노의 내적 축적이 동시에 진행된다. 극복할 수 없는 가해자와의 공존은 스스로를 자기학대 상황으로 내몰게 되어 결국에는 오랜 시간의 자기 부정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성폭력을 당한 이후 '왜 저항하지 않았어?'라고 물어보는 사람들과는 싹 다 관계정리를 하는 게 맞다.


성폭력을 당한 것도 상처일 테지만 2차 피해는 평생에 걸쳐 두고두고 생각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몇몇 친구가 상당히 잘 위로해주고 부모가 저런 말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친구는 물질적 도움도 없고 남이니 힘들겠지만, 그런 경우 빨리 부모와 떨어지고 그 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게 나을 것이라 본다. 경험상 이런 경우 혈연은 필요없다. 그저 내 말을 들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이 짱이다.

한번 당한 것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생각나는게 성추행이다. 걍 인생 끝날 때까지 그 기억이 따라다닌다고 생각하고 신중히 대처하는 게 낫다. 나도 이렇게 말하지만 원조가 필요하면 권력 있는 자들을 이용해라. 꼭 좋은 결말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1. 베트남 학살에 대해선 우리나라 정부가 사과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당했는데도 사과받지 못하는 경험이 있는 이상 그냥 이대로 있으면 안 되는 일이다. 베트남군인을 찬양하는 동상은 헐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2. 요즘 사람들의 말에 날이 서 있다. 게다가 인증이나 팩트라는 단어까지 덧붙여져서 남의 조그마한 잘못에도 사진을 찍어 올리겠다느니 녹음해서 신고하겠다느니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라느니 펄펄 날뛴다. 공정성을 찾는다는 의도는 참 좋지만 어느 정도는 참고 살아가는 것도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에티켓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성추행은 참지 말아야 한다.

3. 어떤 남성은 나한테 정말 꽃뱀에게 당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는데 여자 측이 자신을 느닷없이 성폭행으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 말에 대해 의심한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페미니스트인 걸 강조했으나 한편으론 2차가해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곤 했다. 억울하게 신고당했으니 억울하게 신고당했다 이야기한 건데, 상대방 측에서 2차가해를 거론했다는 것이다. 생각은 개인의 자유이나, 어딘가 모순된 주장이다. 여성 쪽이 꽃뱀인가 아닌가는 둘째치고, 처음부터 남성 쪽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정말로 여성이 신고를 했다면 그건 꽃뱀 이전에 여성의 성격 문제일 것이다. 두번째로 자신의 잘못(이게 뭔지는 나한테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다.)에 대해서 제대로 시인하고 사과한 것 같진 않다. 마지막으로, 예전에라도 꿘이었다면 2차가해를 주장한 그 여성보다는 2차가해라는 단어를 만든 사회 시스템을 의심하는 게 정당한 순서 아닌가. 자신을 괴롭힌 동성 남성들은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는 항상 자신을 신고한 여성만을 탓하고 그녀 때문에 자신의 신세가 추락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내가 그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했는데, 그나 나나 어차피 집안 형편은 비슷했던 것 같고 그보단 아마 어떤 일을 받아들이는 생각의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난 자신의 잘못을 깔끔하게 받아들인 뒤 사람을 탓하지 않고 바로 시스템을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까. 무고한 남성이 일반화될 수 있는 이유는 넘나 무지막지한 권력을 지녔기에 그 자체로 시스템일 수 있어서이다. 꽃뱀이 무슨 시스템 정도의 무언가를 가졌단걸 본적이 없다. 정말 무고한 신고를 해서 남성에게 사죄를 한 여성들도 기껏해야 주변 친구들이 부추겨서 그랬다는 정도다. 한두명 못된 사람들이 있겠으나 아직까지 꽃뱀의 사회화, 조직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기엔 멀은 것 같다.
솔직히 성추행을 법으로 고소해서 해결하기에 무리가 있는 건 인정한다. 코딱지만한 돈 좀 받고 얘가 사회적 관점으로 잘못했다는 걸 인정받은 뒤 내 승리를 장담하고 싶은 것 뿐이지. 그러나 법 계열은 엘리트 의식이 너무 강하고, 남성들 위주이니 퇴근하면 룸싸롱이나 가겠지. 그러니 성추행과 관련해서는 인정받기가 너무 힘들다. 솔직히 한국도 미국처럼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정서를 법에 반영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런 미국의 장점을 본받아야 하는데 인종차별같은 순 이상한 것만 본받고 있어.
장애인과 어린 여성들의 미투도 시급하다. 그러나 그녀들이 SNS에서라도 미투를 신청할 수 있을까는 또 별개인 문제다. '왜 돈 많이 벌지 않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미투를 하지 않느냐'라는 사람들이 다수 있는데, 정작 가장 미투를 하고 싶을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걸 좀 알아줬음 좋겠다. 미투에 관한 기사 초반에도 부모님을 여읜 초등학생 아이들이 태권도 학원에 다니다 성폭행을 당한 사례가 나온다. 피해자들을 탓하는 행위는 결국 가해자 옹호로 이어질 수 있다.

생각해보면 왜 피해자들은 유명한 가해자들만 신고하느냐는 질문은 좀 그렇지 않나? 주간경향에서 말했듯이 가해자가 유명하지 않아서 묻혔을 수도 있고. 당연한 말이지만 나처럼 괜히 주변에서 문제인물로 찍힐까봐 신고 안 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또 적시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로 맞고소 붙어서 없던 돈도 다 뺏길까봐 하기 싫은 사람도 있을테고. 그러고보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왜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는다고 욕을 먹지? 이건 미드 성범죄 전담반에서 문제가 되었듯이, 신고하기 싫은 피해자를 무작정 끌어내놓는 것과 같다고 본다. 가장 치욕적이고 무력한 상황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무조건 존중해야 하는 건 기본이지 않나. 이건 또한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피해자를 몰아붙이는 것과 같다.



 


4. 오늘 사람과 싸울 때 예전 주간경향에서 봤던 칼럼을 활용하여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전에 주간경향에서 '만약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이란 말을 빼라는 충고를 따라서 '그렇게 생각하게 해서'라는 말을 붙여서 사과했더니 무서운 효과가 있었다. 한번 화내면 완전 부모 다 잃은 듯이 펄펄 뛰는 타입인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 사람의 화가 순식간에 확 가라앉은 것이었다. 좀 무섭다는 느낌까지 들었는데;; 아직 이야기는 진행중이지만 잘 정리될 듯하다. 다시금 제대로 된 사과의 필요성과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로 고의가 아니게 남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이 사과를 꼭 활용했음 좋겠다... 라고 해도 요즘 시대에 이런 사과를 할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 같다;; 그래도 혹시나 난 하층민이라 앞으로도 굽실댈 것밖에 없다 싶음 쓰시길.

 

장삐쭈: 고전 애니메이션에 'B급 감성'이 넘치는 더빙으로 웃음을 주는 콘텐츠로 유명하다. 입소문이 나면서 tvN 예능프로그램 SNL코리아에도 나왔고, 기업 광고 CF에도 출연했다. 장삐쭈가 주로 구사하는 것은 10대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급식체'다. 7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동생놈이 요새 나랑 같이 공뭔시험 보고 있던데 맨날 방송 끼고 살더라 처음엔 공신보더니 이젠 다른 거 봄.



무튼 우상숭배 분위기는 변하지 않더라 지림; 그런데 유투브가 1인 방송 체널의 중심으로 뜬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본다. 유투브가 훨씬 더 접근성이 좋지 않나. 나 아는 애들은 다 유투브로 옮겼더만. 솔직히 아프리카는 광고가 너무 많이 뜨지. 그래서 예전부터 난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어떤 크리에이터에게 차라리 유투브로 가면 어떠냐 말해준 적이 있었다. 4년 전인가?
역시나 나는 크리에이터에 흥미가 없어서 주간경향에서 여러 명을 소개했는데 아는 사람은 도티랑 대도서관이랑 이 분밖에 없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땐 낄낄거렸고, 그걸 애니메이션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더빙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 예시로 든 적은 있다. 이렇게까지 뜰 줄은 몰랐다;

 

파라 아이스하키는 원래 아이스 슬레지하키로 불렸다. 슬레지, 즉 썰매를 이용하는 아이스하키와 같다. (...) 2006년 창단된 국내의 유일한 실업팀 강원도청 선수들은 대부분이 국가대표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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