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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y

평행과 역설

사이드: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하지요. 음악에 벌어진 일은 음악이 가령 피델리오의 트럼펫 소리에서 알 수 있다시피 굉장한 부르주아지인 베토벤에서는 사회를 재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의 시대로 오면 음악은 대신 사회 속에서 아무런 기능도 담당하지 못하는 무능력만을 대변하게 됩니다. (...) 오늘날 음악이 혼을 빼놓을 정도로 복잡해져, 음악으로 하여금 사회의 반대축이나 균형축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도록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사회를 고발하는 것이 현재 음악이 갖는 의미라는 것이지요.

 

요즘에는 자꾸 클래식만 듣게 된다. 일단 가사가 있으면 집중력이 엄청 떨어지는데 (요새 일어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 왠만하면 다 알아들음.) 아예 모르는 이태리어 불어 이런거 나오면 그나마 일하는 데나 책 읽는 데 칩중이 되거든. 그리고 솔직히 지금은 내 모든 시간이 독서모임, 책 읽는 시간, 아니면 팟캐스트 듣는 시간이라.

사이드를 보고 싶어 샀는데 자꾸 나는 바렌보임에게 눈길이 간다. 대단한 사람이다. 제목 평행과 역설도 저 분의 말에서 따온 듯. 다니엘 바렌보임이 다른 사람들에겐 좀 괴짜로 보이고 레비가 성자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한테만은 반대로 보인다. 그렇다고 레비가 히틀러에 대해 노골적인 증오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다. 그 분도 자신이 배운 만큼 침착하게 처신을 하고 있다. (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서 명백히 드러나는 인종차별이 나에겐 무척이나 불편했다. 왜 인종차별을 받았으면서 다른 인종을 인종차별하려 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책에서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 분이 쓴 다른 저서를 읽었을 때도 그랬다. 그런 점에선 '음악을 하는데 훌륭한 음악가가 무슨 인종이던 성격이 괴팍하건 어땠단 말이냐, 난 내 발전을 위해 음악을 하고 있고 니가 듣기 싫으면 안 들으면 되지 왜 나보고 음악하지 말라 그러냐, 너보고 프라이버시를 아무렇지 않게 침해하는 양키놈이라 하면 넌 좋냐?'라고 쏘쿨하게 말씀하시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존내 내 취향이다. 개인적으로 유태인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의 글귀를 하나하나 새겨보면 볼수록 그가 너무 좋아 미치겠다. 이런... 이렇게 보수가 되어 가나 ㅠㅠ 그렇지만 나도 애를 때린다거나 여자를 성희롱 하지 않은 이상 성격을 따지지 않고 음악이나 문학을 좋아하는지라.

팔레스타인 이야기가 간간히 나온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수주의자들이 세련되게 멍청한 소리를 한다는 건데, 멍청한 이야기인 걸 알면 비웃으며 스쳐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첫째, 겉모습은 싸움 없이 깔끔하게 가는 듯하니까. (사이드가 이 말을 꺼냈을 때 대체로 바렌보임은 대화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소 성숙하지 않아 보이긴 하다.) 둘째, 그게 멋져 보이니까. 셋째,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인간의 본성. 넷째, 반박하면 내가 싸움꾼으로 보이니까. 다섯째, 주로 나이든 꼰대들이 투쟁하자고 외쳐대는 것 같으니까. 나는 참 젊은이들이 힘들어보인다.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질 텐데 이에 굽히지 말아야 하겠다.

달에 홀린 피에로 처음 들었을 때 너무 혼란스러웠는데 사이드가 베르그와 베베른까지 합쳐서 이방인의 음악이라고 간단히 정리해 버린다 ㄷㄷㄷ 좀 허무하긴 한데 이 이상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없을 듯하다. 조성음악 이후로 쉰베르크의 무조 말고도 여러가지 조성에 대한 대안들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다 현대음악의 초석들이지만 그렇게 사이드로 빠져버린게 많이 아쉽다.

지휘자와 연주자의 역할 문제로 싸우기도 한다. 지휘자는 엄밀히 말해 현재의 음향 엔지니어링 역활을 사람이 도맡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강세라던가 고음 중음 저음 영역대의 분포가 안정 되도록 신경 쓰는게 지휘의 기본 방침이니까. 표현의 역량은 연주자들의 몫이다. 음악에 있어 공연이란 개념을 완성시키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음악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일단 나는 수학적, 공학적 접근을 우선시하는 편이다. 소리 자체가 일단 물리적인 현상으로 시작하니까. 실제로 프로듀싱도 그래프+수치로 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나오는 결과물은 이런 정교함보단 더 감정적인 무언가를 이끌어낸다는게 음악의 양면성 아니겠나.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그렇지 음악에 대해 기대 이상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음악 때문에 산 책이 아니라서 굉장히 의외인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바그너가 멘델스존을 욕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하기사 쓸데없이 국뽕만 강한 극보수주의자란 느낌은 있지만 나름 음악은 괜찮은데 ㅋㅋㅋ

한편 알면서 생각도 못해봤던, 바이로이트의 성과 폭력에 관련된 것들이 점점 심해진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좋아하는 오페라는 춘희 아니면 카르멘이고, 못지않게 고어가 나오는(?) 장르를 선호하는지라 정말 심각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이건 앞으로 페미니즘이 뜨면서 자유로이 제기될 문제 중 하나라고 보긴 하는데 워낙 요새 오페라의 인기가 저조해서 말이다. 사이드의 말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어서 이 사람 존경할만 한가 긴가민가했는데 이 글 보면서 갓사이드로 인정한다. 사실 음악사 공부해보면 나오는 거지만 음악만큼 성 역활을 견고하게 잡아놓고 운영된 예술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미술이 표현의 분리라는 느낌이라면 음악은 역활의 분리라는 느낌..

갑자기 고전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읽는 방법을 실패할 수 없기 때문이란 명구가 떠오른다. 결국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닦아놓은 해석의 가이드라인과, 그 가이드라인과 다른 해석을 내놓아도 고전이라는 거대한 가치는 그마저도 무차별적으로 포용하기 때문인데, 고전의 문학가치적 정치력은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일면 사이드의 볼멘소리가 많이 공감간다. 그러고 보면 문단계가 그렇게 지키려 하는 순수문학도 고전에서는 그 입지가 뚜렷하니ㅋㅋㅋ

 

바렌보임: 모난 것에서 둥근 것으로, 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영웅적인 것에서 서정적인 것으로, 이 모든 것들을 음악에서는 경험할 수 있지요.

 

 

 

좀 더 설명을 붙이자면 개념들을 총체적으로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경험할 수 있기에 음악이 더 좋다라는 걸 말하는 거 아닐까 싶다.


음악 내에서 저런 '표제'들은 언어 의미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모두 하나로 녹아드니까. 하지만 마지막 빼고는 이 모든 것을 과학으로 해결하는 지금은 음악을 재정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긴 한데. 또한 너무 음악을 서사적으로만 바라본다는 점이 나랑은 안 맞는 듯 하다 ㅋㅋ 보수인사로 알고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반면 사이드는 책을 읽어나갈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는 측면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음악평론가란 사람들이 들으면 개거품 물것같은 말을 많이 하는데 ㅋㅋㅋ 무슨 음악가 관련 자료라던가 국가상황 등등 이거저거 덧붙여서 더 클래식이라거나 이름 그럴싸하게 지어서 가격을 무지막지하게 한 뒤 책을 팔던데. 특히 음악 혐오던가. 제목도 참 그럴싸하지요? 솔직히 실망했음. 소설이나 계속 쓰실 것이지. 그들에게 옛날부터 에드워드 W. 사이드가 날렸던 일침이란 느낌이랄까. 아마 사이드가 주장하는 음악의 다양성이 현재 음악계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미술은 딱 한번 보면 인상이 전달되기 때문에 화력(?)이 빵빵한데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보니... 청자가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듯. 아직은 라이온킹 OST에 아프리카 음악을 쓴다거나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게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몇 안되는 세상 것들 중 하나가 음악이다보니 희망을 가져본다.

 

팔레스타인 사람에서 이집트인으로, 다시 미국인으로 표찰을 바꾸어야 했던 사이드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그런 느낌을 경험할 것이다. 강원도 촌놈에서 서울 대학생으로, 다시 주변국 출신의 미국 유학생으로 신분을 바꾸면서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한 나로서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데 큰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여기서 강원도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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