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솔직히 이 논문 리뷰를 다른 사람들(특히 남자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일단 난 GL물이나 BL물을 좋아하는 덕후들 이상으로 동성애 문화와 퀴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아마도 내가 쓴 다른 리뷰들을 보면 훨씬 더 잘 알 수 있겠지. 그래서 솔직히 이 논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상당히 반가웠다. 하지만 문제는 이 책이 절판되어서 지금 시중엔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2호는 구했지만 창간호는 중고책방에서도 도저히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논문사이트 RISS에 들어가서 논문을 되는대로 틈틈히 구매하여 다운로드한 다음 프린트에 인쇄했다. 인쇄 쪽에 아는 형이 없었다면 프린트하는 데만도 비용이 꽤 나갔을 것이다. 다운로드하는 것 자체도 비싸다. 일단 남에게는 추천해주고 싶지 않지만, 혹시 레즈비언이나 퀴어나 연애에 관련된 논문을 쓴다면 꼭 구해볼 것을 추천한다. 퀴어에 대한 알찬 정보들이 상당히 많다.
퀴어는 형용사로 '이상한', '색다른'을 나타내는 용어였다. 하지만 현재는 성소수자들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중이고, 그 의미는 점차로 확대되어 가는 중이다. 아니, 이 논문에서 이야기하듯이 아예 독립하여 하나의 개념으로 들어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음.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다. 원랜 성소수자도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섹슈얼(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로 넷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요즘엔 TIQQ2S(트랜스젠더(성전환수술을 하지 않고서도 자기 내면에 숨겨진 여성성 혹은 남성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사람), 인터섹슈얼(어지자지), 퀴어, 퀘스쳐닝(성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인 사람들), 투스피릿(두 개의 영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일어났던 현상. 인도의 히즈라도 이에 속한다.)) 가 포함되어 LGBTTIQQ2S로 많아졌다. 와 설명하는 데만도 지금 줄 엄청나게 길어졌다.
아무튼 퀴어에 대한 설명은 일단 훗날로 미루기로 하고, 주로 레즈비언들이 모여서 만든 이 논문은 퀴어와 연애 이야기를 동시에 하지만 특이하게도 내용이 분산되는 경우는 없다. 짐작이 가겠지만, 이들은 매우 힘든 사랑을 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직접 체험한 직접적 간접적 연애담들을 담아놓아서 굉장히 독특한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잡지에 포함된 모든 논문들이 맘에 드므로, 논문 하나 당 명대사 하나씩 따와서 담고 전체적인 줄거리(?)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약간 아카사님 논문 느낌이 들도록?!
1. 서문
생 틸레르라는 사람은 인간도 허리를 잘 접으면 오징어처럼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다. 이에 대해서 퀴비에라는 학자는 격하게 분노했고, 이들 사이엔 격한 논쟁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윅스킬이라는 사람은 움벨트라는 개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둘레세계라는 이론을 펼쳐서 인간과 진드기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식의 이론을 펼쳤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이론들에 얼마나 유연해질 수 있을까? '보통 정상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윤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자연의 그 무한한 가능성과 다양성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2. 퀴어 이론의 얼굴들 1
본격적으로 퀴어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며,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아니, 거의 찬양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눈앞이 어지럽고 핑핑 돌아서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젠더에 너무 사로잡혀 경직되어버린 페미니즘사상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논문이다. 우리나라에 이 정도까지 진보적인 사람이 있다니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며,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논문의 두께나 쓰인 용어를 보면 만나도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버거울 것 같다는 느낌도;;; 일단 집에 있는 젠더 트러블 꼭 밑줄치면서 읽어야겠다(...)
3. 자주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않고ㅡ퀴어&정체성에 헌신하기
퀴어에 헌신하고 이성애적 편견에 저항하기 위한 방법을 설명한 논문이다. 마르시아의 정체성 지위 모델이란 걸 사용했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특히 이 내용은 30대 이상의 오타쿠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타쿠인 자신에 열심히 헌신하면서도,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결혼 강요에 대해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게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난 생각한다. 굉장히 근원적이고 힘든 방법이지만, 이 과정을 통과해야 하위문화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흡수되거나 '튕겨나가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 시간이 널럴한 사람들은 이 잡지 전체를 구입하되, 특히 이 논문을 꼭 두번세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사실 이 논문이 최근 내 입장을 정리하는 데 힘을 주었다.
4. 퀴어, 미학, 정치
저자는 모든 미학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에 대해선 나도 공감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사회에 공표하는 예술은 결코 일기장 수준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래서 나도 여태 소설이나 시는 쓰고 있지 않다지... 여기선 그레이슨 페리 혹은 클레어,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그리고 그의 더블을 예로 들어 '창의적' 퀴어정치예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전시회를 열었다고 하는데, 가보지 못해서 너무나 아쉽다.
5. 퀴어와 연애하기ㅡ문학정치학으로 본 영화 줄탁동시와 소설 뼈도둑
이 논문은 영화와 소설과 퀴어와 연애를 동시에 다루면서도, '이동하는 사람'에 대한 주제로 이 모든 것을 통일시켜버린다.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계속 호소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말랑말랑한 논문은 아니다. '쌍화점'같은 영화나 일부 자극적인 소설들을 예로 들어서 대중문화에서 다루는 동성애가 퀴어를 더욱 비정상적인 성적 지향으로 표방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런 소설을 쓴 소설가들 중에는 김영하와 하성란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도대체 이 논문에서 극구 찬양하는 줄탁동시와 뼈도둑은 어떤 거물들인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지금 이 리뷰를 쓰는 필자도 봐야 하는데 계속 미뤄지고 있다(...)
6. 우리는 '제대로 된 혁명'을 위하여, 연애를 필요로 한다: D.H.로렌스를 기억하며
이 논문 또한 다섯 번 정도는 읽은 것 같다. 딱 연애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성애자던 동성애자던간에 불편함 없이 볼 수 있는 논문이다. 무슨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각주를 보면 로렌스의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문으로 실어놓았다. 그냥 이 논문 자체를 난 문학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교훈적이기 이전에 문체도 상당히 유려하고 아름답다.
7. 언니 저 달나라로: 백합물과 1910-30년대 동북아시아 여학생 문화
일단 이 논문은 소프트 백합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자극적'이라 욕하는 소녀혁명 우테나와 신무월의 무녀, 어둠과 모자와 책의 여행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물론 중심내용은 백합물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아님이 보고 계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학생들간의 이성연애가 금지된 탓에, 오히려 여학생들의 열렬한 관계가 상대적으로 1910년대에서 30년대까지 동아시아에 용인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선 다소 충격을 먹었다. 그 당시 유행(?)이었던 여성 동반자살 사건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8. K의 LGBT 서가를 위하여: 국내에서의 퀴어 청소년소설 수용현황 검토
나도 이 논문에 깊이 공감하는 게, 딱히 LGBT에 대해서 다룬 소설이 아니더라도 퀴어적인 이야기가 등장하거나 아니면 주인공의 과거 속에서 스듯이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건 솔직히 아직도 퀴어한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으로밖에 떠돌뿐, 공식적으로 뭔가 제대로 체계가 잡혀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그리고 이 논문에선 한 발 더 나아가 국내에서의 퀴어 청소년소설의 창작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길 기원하고 있다. 솔직히 내가 읽은 책 중에서도 그나마 추천할 만한 퀴어 청소년소설이 '비너스에게' 밖에 없다. 상당히 아쉬운 바이다.
9. 정체성과 차이의 정치를 넘어, 퀴어 운동의 다자연애를 꿈꾸며
내가 정말 참여하고 싶어서 환장을 했었지만(...) 결국 참여하지 못했던 퀴어 버스와 동성애자 직원에게 인센티브 등의 혜택을 주는 기업들 이야기를 꺼내면서 국내 퀴어 운동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논문이다.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머무르지 말고, 서로의 차이가 연계되는 관계를 맺어가자'고 강조하는 이 논문은 언뜻 보면 쉬워보이면서도 다분히 철학적이다. 운동과 운동간의 연애를 강조하고 있다는 데에서 이 논문 내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10. 레즈비언과 퀴어와 연애와 금수와
이 논문을 쓴 필자는 레즈비언 커플이다. 8년째 동거중이며, 거의 부부같은 사이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성관계를 맺지 않게 되었다. 여자 대 여자의 러브러브 관계인데 정작 성관계를 맺지 않으니 레즈비언 커플들 사이에서도 온갖 걱정을 받는다고 한다. 연인인지 부부인지 기어코 구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과 귀찮음과 남성 아이돌에게 푹 빠진 애인에 대한 약간의 질투감이 귀엽게 드러난 일기같은 논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성을 좋아하고 덕질은 철저히 동성만 추구하는) 어중간한 이성애자인 필자도 할 말은 있다. 레즈비언 커플이 섹스(?)를 하지 않으면 걍 동성친구랑 다를 바 뭐냐? 라는 말로 레즈비언이 차별당한다고 하는데 이성애자도 차별받는다.
애 안 낳을거면 뭐하러 결혼하냐?
섹스리스이면 뭐하러 연애하냐?
결국 아무 생각없이 말하는 년놈들이 문제다.
단순히 동성연애와 이성연애 간 차별의 문제는 아니라고 봄.
11. 리뷰: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음악 이야기
그녀 또는 그와의 미묘한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 또는 그를 떠나보낸 다음 그것(음악)과의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남은 것은 나와의 연애 뿐이더라.
그리고 그녀 또는 그와의 연애는 또 시작될 수도 있겠지.
... 내 얘기다. 달리 할 말이 없다.
12. 혜진 He-Jin Kim이 쓰지 못한 글을 대신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트랜스젠더 활동가 혜진 씨의 이야기이다. 원랜 이 잡지에 기고를 할 예정이었으나 2012년 6월에만 8명의 LGBTI가 살해되어서 그것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삐라 측에다 통보했다고 한다. 그 후 이틀 동안 세 명의 레즈비언들이 죽음을 당했으며, 그것에 관해 활동하기 위해 원고를 끝내지 못할 것 같다는 메일을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보낸다.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다른 잡지의 인터뷰에서 삐라 잡지팀은 그녀가 다행히도 살아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요청을 삐라 측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2호에서는 죽음에 대해서 다룬다. 정체성의 차이로 인해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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