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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Development

정판교의 바보경

다른 새를 따라 하기를 좋아하는 새 한 마리가 있었다. 다른 새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새였다. 다른 새가 날면 따라 날고, 저녁이 되어 둥지로 돌아오면 자기도 따라서 둥지로 돌아왔다. 무리가 앞으로 날아갈 때 먼저 앞선 적이 없고, 그렇다고 뒤로 물러날 때도 낙오되어 처진 적이 없었다. 먹이를 먹을 때도 앞다투어 먹지 않고 대오를 이탈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다른 새로부터 위협받을 일도 거의 없었다.

 

 

 

대통령 노무현이 바보를 자처하면서 바보의 의미가 많이 왜곡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노무현은 바보 이미지와는 약간 느낌이 다르다. 

 

 하느님은 확실히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밀라고 하셨다. 그러나 왜 하필 오른뺨을 맞았고 왜 굳이 왼뺨을 내밀어야 하는 것일까? 김규항은 예수전이란 책에서 새로운 의견을 적는다. 오른손은 사람들이 주로 쓰는 손이니 오른손으로 제대로 치라는 의미로 왼뺨을 내미는 것이라 한다. 정말인지 제대로 알 방법은 없으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통 실천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는 상당히 그럴 듯하다.

 요즘 세상에는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항상 승리하면 기분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단점이 있고, 언제나 성공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다. 아니, 단지 기분이 나쁜 상태라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등 뒤에서 툭툭 돌을 던지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마치 그 말을 꼭 던져야 자신이 인생에 있어 늙어 죽을 때까지 승리자로 있을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굳이 거론하진 않겠지만 내 주위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 예전엔 웃어넘겼지만 지금 그들과 떨어져서 그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들의 말투는 마치 지나가는 행인의 뒤통수를 무자비하게 벽돌로 치는 것과 같았다. 무차별인 경우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 책은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일단 험담이라는 벽돌에 맞은 상황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자신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에서부터, 그 상황을 넘어가는 재치까지 폭넓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철저히 바보가 되어 현명하게 무시하면 언젠가 가해자인 상대가 병신이 된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렇게나 질질 싸댄다고 우리도 질질 싸대면 결국 모두가 오줌싸개 똥싸개가 되서 가마니 쓰고 소금 얻으러 다녀야 된다. 그 순간 한 명이라도 험담이라는 구정물을 통제해야 된다. 한 번 바보가 되는 걸로 그 공동체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면, 괜찮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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