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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출판사
동녘 | 2013-08-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왜 1퍼센트의 부에 침묵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침묵하는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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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파국으로부터가 아니라 파국의 예언자로부터 보호되고 있는 것 같다. (...)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아서 쾨슬러가 계속 상기시켰듯이(헛수고였다.) 인위적인 맹목은 유전이다...- p. 114

 


 

 

 인간은 호모엘리건스. 즉 자유롭게 태어나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동물이다.

운명은 어쩔 수 없으나 자신의 인격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그리고 배우자도.)

 

 그러나 대부분은 구조화, 즉 확률의 조작으로 인해 선택지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선 마케팅 전략이라던가 심리학을 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간단히 예를 들어, 커피무료이용권 없이 로마로 갈래 아니면 커피무료이용권 얻고 로마에 갈래 아니면 그리스에 갈래?라는 선택을 여행사에서 제시할 때 대부분 로마 여행을 선택한다거나. 저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단어가 내적 소망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라 말한다. 그래서 세계에 맞설 용기가 없는 인간들이 간혹 '현실로 돌아가야겠다'라는 븅산탈춤같은 소리를 한다. 그렇다고 '자, 단지 텍스트에 불과해.'라고 고개를 으쓱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 결정적인 문제는 이런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내가 만일 정신병동에 끌려가서 '난 미친 년이 아니다'라는 소리를 해봤자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그 말을 안 믿으면, 결국 내가 신종 미친 년이 되는 것처럼, 답이 없는 것이다. 물론 그냥 미친 년이라고 주장하진 않는다. 수많은 가정들과 근거들이 만들어진다.

 

 1. 경제성장은 만능유일의 길이다.

 여러분은 구체적으로 돈이 얼마나 있어야 충분하고 유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물어보면 보통 사람들은 침묵한다. 혹은 '적당히 돈이 있으면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도 구체적인 액수를 말해보라 하면 침묵한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명확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높은 곳에 계신 인간들은 그것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라고 판정한다. 결국 신경제주의라는 이론이 생겨 '보이지 않는 손'을 모독한다. 몇 번의 위기상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마다 탈규제를 밀어붙여 부자들이 그 손을 조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아님 매경이코노미같은 잡지를 보면 이 탈규제를 어떤 방식으로 인간들에게 세뇌시키는지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천재는 소수인데, 능력도 없으면서 그런 유명인사들과 꼽사리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낙수효과도 결국 경제성장추구의 결과라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퇴직 관료 마피아라 한다.)

 

 2. 영구적인 소비증가는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다.

 오빠의 말로는, 서울의 거지들이 제일 비싼 가구를 사서는 집에 들여놓으려고 용을 쓴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요컨대 가난한 현실에 쫓겨 사랑을 받고 자라는 인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치장된 사랑을 구매하면서 인간은 나르시시즘을 느낀다. 그리고 '진짜' 소비자는 실패한 소비자에게 모든 사회 시스템 책임을 귀속시켜, 창피를 느끼게 하고 시스템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게 한다. 세월호 추모자들이 제대로 된 옷을 걸치지 않았다며 99%의 시민들에게 빅엿을 날렸던 최근의 익명 기사가 아주 대표적인 예를 보여주었다. 결국 사람들은 이러한 시스템에 분노하지만 배움마저 부족하여 그 힘을 산발적으로 표출하고, 효율적으로 드러낼 줄을 모른다. 결국 남들보다 한 발 앞서야 승리할 수 있다, 내가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방식은 개인의 손실을 회복할 수는 있지만 또 다른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아랫사람들에게 동정(...ㅋ)을 느껴봤자 시스템의 불평등은 더 심해진다.

 

 3. 불평등은 자연적이라 삶의 불가피성에 말려들어서 사는 게 모두의 이익이다. 경쟁은 사회의 정의인 것이다.

 이 책은 불평등의 격차가 지나치게 심해진 현 상태를 돌아보며 '대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개소리에 대한 규탄을 넘어 토마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이론이 헛된 것임을 주장한다. 놀랍게도 외국인들이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데카르트와 칸트 이론의 맹점도 깔끔하게 인정한다. 결국 모두 똑같은 소리인데, 한마디로 남들 대다수는 다 따르는데 왜 님은 안 함? 이 소리가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경제적 평화에 대해서 설파하고 계신다. 주위에 토마스 홉스 이론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는데... 철학적인 면에서도 흥미로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우리는 이미 옛날 고전 소설이 더 이상 자극적이지 않다. 지금 9시 뉴스가 한창 나올 시간인데, 그것만 보면 이미 세월호 침몰에 대한 엄청난 뉴스가 나오고 있다. (내가 보기엔 지금은 국민뉴스같은 팟캐스트가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같지만.) 이미 이런 가혹한 일들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는 지금 다시 희망의 끈을 놓고 절망하고 있다. 돌베게에서 나온 <분노하라> 저서가 강남 코엑스 전시회를 들썩하게 만든 건 이미 머나먼 옛날 일 같다. 지금 국가인권위원회가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는데 쓰레기같은 놈들에게도 최빈곤층 사람들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우리 우물 안 개구리들의 고정관념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 같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마치 침략을 당하는 제3세계의 사람들이 그렇듯 무기력한 결말을 맺는다. 아무리 전세계에서 파국의 예언자들이 속속들이 생겨나도 이 파국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한다. 나도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새누리당을 뽑는 사람들을 보면 기가 찬다. 하나만 물어보자. 이 뭣도 없는 인간들아. 당신들이 부자들 편 들면 부자가 될 성 싶으냐? 돈도 빽도 두뇌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으면서 왜 부자들 편을 드는 정치가들을 뽑으려하고 재벌 2세들에게 알랑거리는가? 정신적 딸딸이냐?


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