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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평생 우정을 나눈 친구라 하더라도, 인간관계는 수평을 이루기가 아주 힘들다. 관계에는 역학의 부등호가 있어서 한쪽이 좀 더 우위에 있고 다른 한쪽이 더 배려하게 돼 있다. 언제나 자기를 희생해 더 사랑하는 사람, 더 아껴 주는 사람이 있지 않던가. 그들은 밀고 당기는 힘의 관계에서 기꺼이 주도권을 내어 주기 때문에, 상대방은 이들의 선하고 약한 마음을 때때로 조종하기도 한다.

 

 

* 서민씨 글은 읽지 않았습니다. 요새 굉장히 짜증나는 글을 쓰더군요. 여기서도 부인 얘기를 쓰는 등 주제와는 좀 먼 이야기를 썼습니다.

모종의 사건들로 인해,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이상(그리고 내가 그 인간의 정치관, 경제관, 술버릇, 기타 등등에 관해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 이상) 인간관계는 그냥 안 좋은 상태로 있기로 했다 ㅋ

어차피 예전엔 평소 얼굴이 띨해보여서 그런지 어떻게든 이용해보려는 인간들만 들러붙었는데 지금은 성격 드러운 거 보고 다 떨어져나가기도 했고(...) 아무튼 친구도 연애도 2차원 체고다! (응?)

그래서 그런가 20대 때에 읽었으면 더 공감이 되었을 거 같은데, 미안하지만 이제서야 이 책을 읽어서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리고 의외로 리얼충들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더라;

 

조니 뎁 닮았다는 wt의 실패한 연애 얘기를 참 감명깊게 봤다. 실례지만 앰버 허드-조니 뎁 간에 이러쿵 저러쿵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게 생각난다.

아무튼 SM 계열들은 제발 플레이를 할 거면 커뮤 계열에서 해라; 일반인들에게 그런 거 강요하지 말고 좀.

 

에세이 제목과 얇은 두께를 보고 무조건 혹해서 구입하시면 안 된다. 아무래도 에세이를 쓰려 모인 저자들이 관록 있는 분들이라 책 소개는 꽤 난이도가 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섞인 영화 소개가 긴장도를 다소 늦춰주는 건 있다.정말 우리나라는 영화를 좋아하는 듯하다. 하기사 코로나 때문에 극장이 문을 닫을 때도 매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페북에 다수 속출할 정도니.

잠깐 딴 얘기로 나가자면 책을 읽다보니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구절이 나왔다. 남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차분한 영화만 보면 자기 때문에 같은 영화관을 가도 서로 다른 영화를 봤다는 것이다. 할 말이 굉장히 많고 신경도 쓰였는데 책 끝까지 보니 결국 헤어졌다 다행. 취향 양보 안 하는 인간과는 안타깝지만 빨리 이별하세요. 어차피 헤어질거 오래 끌수록 정들어서 손해봅니다.

아무튼 저자들의 사랑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가장 흥미있는 내용이다. 혹 저자들 사이에 팬으로서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소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책에서는 자위해도 병 안 걸릴 것처럼 나오는데 코로나 때처럼 손 안 씻으면 병에 걸릴 수 있다. 19세기면 아직 위생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최소한 전염병에는 취약했지 않았을까. 특히 남자들은 안 그래도 안 씻는다던데 더 안 씻으면..

 

2002년의 파르바티, 아쉬와르야 라이는 내가 가끔 영화 잡지에 소개 글을 쓰기도 했던 여신 중의 여신이고, 찬드라무키 역을 맡은 마두리 딕싯의 춤 연기는 한국 대중들이 종종 이상한 것으로 취급하곤 하는, 영화 중간에 뜬금없이 춤과 노래가 등장하는 인도 '맛살라' 영화가 담아낼 수 있는 역동적인 아름다움과 고전적 우아함의 최대치에 근접한다. 1955년 버전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 캐스팅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영화 얘기를 좀 더 하자면 난 사실 영화보단 소설이다. 연애물은 특히 그렇다. 세 얼간이를 보다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거북해서 보다 말았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끝까지 봤는데도 지루하단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인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말에 의하면 그 부분이야말로 가장 인도 영화 같은 부분이라는데, 그 말에 의하자면 난 그닥 인도 영화엔 취미가 없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로맨스 영화 자체를 좀 지루해했던 것도 있었고; 나에게 좋았던 로맨스 영화는 BL물인 로드 무비 뿐이었으니까(...)

 

참, 얼마 전에 도망가지 않는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라는 현수막에도 커다랗게 하트 모양이 있었는데. 차마다 꼽혀 있었던 여대생 마사지 '찌라시'에도 하트가 있던데.

(...) 며칠인가 지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TV를 보는데, 어떤 아이돌 가수가 자신의 두 손을 정수리에 꽂으며 카메라를 향해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언제부터 이 모양은 이렇게 한결같이 징그러워진 것일까.

 

 

그나마 요즘엔 코로나라던가 여러 일들로 연인에 관련된 자잘한 이벤트라던가 유흥업소가 불을 밝힌다거나 하지 않아 솔로인 나로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발렌타인이나 화이트 데이 등의 이벤트날 초콜릿을 수북히 올려 팔아대는 광경을 보면 이젠 좀 괴기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마치 전남친이 나한테 준답시고 감자전분스틱에 초콜릿 중탕한 걸 끼얹어 흐물흐물 기이한 자세로 녹아내리던 그 괴식처럼.

그나저나 이거 너무 이 짤이 연상되더라.

 

1999년에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에 걸리셨고, 아버지는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 날이 늘었다. 동생은 당구장에 가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잠으로 채웠다.

(...) 그런 어느 날, 눈썹이 유난히 짙은 여자아이가 나에게 쪽지를 전해 주었다. '욕이라도 쓴 걸까....' 싶었지만, 주말에 시간이 되면 영화를 보러 가자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굉장히 태평한 성격 같았는데 의외;; 하기사 직장을 찾아다닐 때 식빵만 먹어서 남은 식빵들에 곰팡이가 슬기까지 했었다는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분이셨지.

 

그녀가 이따금 내보이는 기호들은 닥치는 대로 내게 상처를 입혔다. 때로 어떤 말은 징후가 되었고, 때로 어떤 행위는 증거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나는 그 앞에서 몹시 대범한 연극배우처럼 마치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한 연기를 했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과 섞어놓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베르테르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쓰니 그럴듯하군요 ㅋ 그러나 너무 관찰만 하다보면 골든타임을 놓치고 마는데; 일본 특유의 사랑 이야기가 현실에선 해로운 이유이기도 하고(...)

 

어쩌면 영국의 펭귄 북스에서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으로 제작한 70권짜리 포켓 펭귄 박스 세트에 있던 닉 혼비의 단편 안 그러면 아비규환의 어떤 장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열다섯 살짜리 사춘기 소년이 모든 방송을 '빨리 감기'할 수 있는 중고 VCR을 우연히 손에 넣고 내일 방송 모레 방송 글피 방송 다음 주 방송을 보다가 6주 후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후 처음으로 섹스를 한다는 이야기다. 잠깐, 섹스라고?

 

Q 지구가 멸망하는데 왜 소년이 섹스를 하는가?

A 안 그러면 아비규환이니까.

 

 

그런데 이 책을 안 보더라도 (아마 이 책을 본 것 같은) 일본 남자들이 계속 지구 종말 후 살아남은 한 명, 혹은 소수의 남자가 다수의 생존한 여성들과 함께 사는 얘기를 써 왔다. 그러니 그쪽을 찾아보길 바란다. 아무래도 요새 젊은이들에게 VCR이 뭔지에 대해 알아달라 하기엔 무리인 것 같으니. 아무튼 요새는 종말의 에덴이 애니화된다고 해서 이런 스토리가 유명한 모양인데 옛날부터 이런 이야기는 언제든지 있었다는 것. 아마 닉 혼비도 무언가의 민담 같은 걸 빌려서 썼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섹스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일본의 세카이계도 일종의 그런 거 아닐까? 종말을 방관하고 여자아이랑 섹스를 할 것인가 아니면 여자아이와 섹스할 시간을 포기하고 종말을 막음으로서 다수의 사람들을 살릴 것인가.

 

작가는 의외로 독자들에게 관심이 많다. (...)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조심할 뿐 블로그에 들어가 보고 그 사람이 쓴 다른 글도 찾아본다. 이 사람이 내 글에 공명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어떤 기억들에 사로잡혀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미래를 갈망하는 누구이기에? 그리하여 글이 안 써지는 밤에는 은밀하고도 탐욕스럽게 독자들을 스토킹해 보는 것이다. 그 스토킹의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친절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 리뷰를 쓰면 일부 작가들이 쪽지를 보내기도 하고 댓글을 남기기도 해서 재미있다 ㅎ

공감가는 글귀.

 

아이코가 사는 곳은 조후인데 도쿄도 조후는 실제로 가 본 적이 없으니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어떤 곳인지 알 것 같다고 혹은 실제 조후가 어떤 곳인지 알 것 같다기보다는 혼자서 머릿속으로 조후는 이런 곳일 거야, 라고 그리는 상이 내게 있다. 그것은 두 명의 만화가가 사는 곳이 조후이기 때문이다. 조후에 또 다른 만화가가 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후에는 내가 아는 두 명의 만화가가 살고, 그 두 만화가야말로 내게 있어 중요한 사람, 흔들리지 않고 박혀 있는 표지 같은 느낌으로 서 있다. 미즈키 시게루와 쓰게 요시히루 이 두 사람인데, 이 두 사람은 어느 시기 같은 공간에서 만화를 그렸다.

 

 

마이조 오타로의 소설 제목 중에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정말 사랑해가 있다. 여기에 낚여서 그 책을 읽어봤는데 뭔가 격투 애니 여러 편을 몰아본 것 같아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연애소설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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