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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당신과 저녁 먹을 좋은 구실

자매가 있다는 것 중에서

 

악어처럼 울고 있으면 휴지를 가져다 옆에 두면서 일단

자라고 말해주는 것

 

제일 좋아하는 바닐라 라떼 커피 혹은 치킨

틈만 나면 같이 사 먹자고 조르는 것

 

모기가 있을 땐

모기 추적자와 살충제 살포자로 역할 분담을 나눠서

대개 2:1 이상의 쪽수로 모기를 잡을 수 있는 것

 

바보같이 가게에서 바가지 쓰고 오면

같이 가서 사장님 이게 말이 되냐

고 따져주기도 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

 

 

이것도 페친이 읽어보고 사람들에게 널리 추천해달라고 요청받은 시집이다.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돌도 던져 달라고 하던데, 딱히 지적할 만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여성을 차별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등, 매우 올곧은 그녀의 마음이 잘 표현되었다. 김삿갓의 사회 비판 시들도 상당히 과격했다고 알려져 있고, 최근까지도 인터넷 기사와 관련된 시를 댓글로 달다가 상당히 유명해져 책까지 낸 시인도 있다. 이런 시에 대해서 난 매우 긍정적으로 여긴다.

 

짝사랑에 대한 시가 나온다. 그러고보니 난 한 번도 짝사랑한 적이 없어서 짝사랑을 잘 모르겠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작정 고백했고, 그 사람이 차면 화를 내면서 그 다음 날 다른 사람을 찾곤 했다. 그러고 보면 짝사랑은 나름대로 그 과정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 시집은 사랑에 대한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고보니 여동생도 없네 ㅋㅋ 나는 자매가 없지만 어머니에게는 이모가 계신데, 어린 시절 반찬 한 번 뺏어먹다가 정수리가 이모 젓가락에 꽂혀서 피가 슝슝 났던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계시더라(...) 나는 남동생과 싸우다가 잇몸에서 피나고 팔에 손가락 자국이 며칠간 선명한 적이 있었던지라, 오히려 저렇게 목숨걸고 싸우지는 않았다. 그러고보니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더라. 내가 굳이 자진해서 피해자가 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오히려 지금은 마음껏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는 자매들이 부럽더라. 오히려 그렇게 싸워대서 속마음은 다 파악했으니, 나중에 둘 다 독립해서는 알아서 서로서로 돕고 살기도 하고.

 

공연 중에서

 

허름한 폐가의 사진을 찍으려다

가난과 불행, 공포와 불안이 합체!

리바이어던이 된 귀신이

흐느적흐느적

그 안을 거닐다 이쪽을 맨눈으로 쏘아보는 하필 그때

셔터를 하필 눌러서 놀라 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는

엉치뼈, 나의 진화

 

추억과 애정이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치정과 애증이 신명 나게 백댄스를 춘다

 

이 집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집이 아니랍니다

푯말 하나 안 달린 집에서 수많은 말풍선들이 한꺼번에

작정하고 푸드덕푸드덕 날아올랐다

 

걸음이 날 살릴지 다리를 믿어보려는데

뒷덜미를 홱 낚아챈 목소리

명패는 달아주고 가셔야죠

 

 

난 왜 이 시를 읽으면서 공무원을 시켜 학대부모에게서 학대당하는 아동을 떼어내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생각날까.

아무리 학대 당하더라도 아이가 부모와 살겠다는 의지가 강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이 사회에서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문 닫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르는 게 바로 집이 아닐까 싶다.

 

다트

 

나를 뚫고 지나가는 당신의 눈빛!

코가 아니라 눈으로 던져주세요.

가장자리에는 점수가 없답니다.

더 힘을 빼세요 비껴 꽂아도 틀림없이,

꽂혀요.

 

나는 여기 다리도 팔도 없이 늘어져

팽팽한 심장을 샅샅이 펼쳐 걸고 점점 둥글어져

조악한 나이테를 빼곡히 늘여 놓고선

달려나가는 상념을 붙잡아봅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이미터 사십만큼입니다.

시끄러운 실내는 위에서부터 내리 꽂히고

병든 맥주는 거품을 하얗게 물고

하늘을 나는 도도한 다트 핀

 

바로 거기서 영혼이 태어났다가

그대로 땅에 널브러졌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 맛있는 칵테일 찾아 바들을 전전할 때마다 항상 구석에 다트가 진열되어 있었다. 가끔 기분 내키면 했었는데. 이 시 보니 바 가보고 싶어지네 코로나 때문에 어차피 못 가지만 ㅠ

 

하고 싶다

 

같이 소꿉장난

 

핵발전소 앞에서 시위

시답다 할만한 만화 보기

흑역사 표백하기

 

어쩌다 세탁물을 맡기면

깨끗하고 향기 나는 항상

빳빳한 것으로 돌아올

 

설거지 하고 나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말하는

 

내가 아무것도 미안하지 않은 사람과

 

영혼을 구

 

하고 싶다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SNS나 카톡이나 방송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 자유롭게 행동하며 종교나 정치 등 가치관이 달라도 구애받지 않는다'라고 하는 남자들이 많더라. 근데 난 그건 여성들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사람과 취미를 공유하고 싶고, 그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는 게 결코 잘못일 리가 없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솔로일 수는 있어도. 그렇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있고, 아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걸 상상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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