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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bel Prize in Literacture

여인의 저택


여인의저택
카테고리 소설 > 중국소설 > 중국소설일반
지은이 펄 S. 벅 (길산,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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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서평으로는 참으로 보기 힘든 별 다섯개짜리이다. 플러스 1점까지 아낌없이 추가해버리고 싶었으나 본인이 선호하는 소설의 분위기에 비하면 좀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조용히 빼버렸다. 대지 3부작을 읽을 때부터 짐작했지만 펄 벅의 소설에서 단연 주목받는 건 캐릭터이다. 인물묘사에 아낌없이 종이를 투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성은 잊지 않고 넣는다. 평범한 사람의 삶 속에서 휴머니즘을 찾는 그녀의 정신은 이 소설에서 나오는 안드레 신부를 닮았다. 아니면 안드레 신부가 그녀를 닮은 건지? 

 

 줄거리는 우 부인을 주축으로 흘러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여자의 방식으로 시골 안 부유한 저택 안에서 실권(?)을 쥐고 살고 있는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저택도 좁게 느껴지고, 결국 40살 생일을 맞아 남편의 방에서 떨어져 나가기로 결심한다. 가끔씩 그녀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우 부인'이 이름으로 혼동될 정도로 뜨문뜨문 나타난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 스토리는 가부장제 세계에서는 어느 땅덩어리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워낙 뛰어난 펄벅의 글솜씨로 인해 얼굴이 좀 다듬어진 중국 사모님의 이야기조차 첨예하고 아름답게 표현된다. 참으로 마법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까지 줄거리를 듣고 나면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은 독자분들은 보통 '인형의 집'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책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설의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마저 가부장제 속에서 그닥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펄벅은 여성주의자보다는 오히려 인류박애주의자에 가깝다. 또한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는 사랑이야기가 더 있다. 안드레 신부와의 사랑이야기에서 육체적인 사랑, 집착 등등을 기대하고 읽으신다면 분명 실망하리라. 그러나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은 분들이라면 분명 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서 숨어있는 광기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비교적 평화롭게 끝난 소설이지만, 난 아래의 글귀 속에서 문득 '죽은 왕녀의 파반느'를 떠올렸다.

 

 '그녀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아무런 의무가 없으며 단지 사랑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면 사랑마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물론 강 부인과 달리 좋은 몸매를 유지하고 유모와 달리 침착하게 집안의 일을 정리해가는 우 부인의 모습도 놀랍긴 하다만, 약간 삐딱하게 꼬여있는 본인의 시선으로는 아니꼬운 여자였다. 시대의 속박을 벗어나 자유를 찾기를 바라면서도 내심으로는 가정이 자기에게 끌려오기를 바라고, 강 부인과 추밍을 위하는 척 하지만 결국은 그들을 자신의 이중적 인생 속에 끌여들여 희생시켰다. 그녀의 미모와 세견된 모습은 하인의 각별한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다. 딱히 그녀의 부를 언급하고 싶진 않다. 어차피 한 사람이 제대로 살려면 몇몇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하니까. 문제는 우 부인이 그녀가 그녀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데에 있다. 아무튼, 아름답지만 숨막히는 삶 속에서 우 부인은 드디어 사랑을 만난다.

 

 안드레 신부와 우 부인의 사랑은 우 부인의 결벽만큼이나 지독히 영적이었다. 처음엔 우정으로 넘어갈 뻔했지만 지나치게 서로를 멀리하는 그들이 안쓰러움을 넘어 소름끼쳤다. 시선조차 서로 섞이지 않는 그들의 만남에 오한이 절로 느껴졌다. 아직 20대도 벗어나지 못한 나로서는 육신을 초월한 사랑을 이해할 레벨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더 놀라운 점은 우 부인의 성장이다. 인생에서 겪을 일은 다 겪은 중년대 여인도 사랑을 하게 되면 성숙해지는 것일까. 아니, '아이낳는 기계'에서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분명 성숙과는 다르다. 어떤 말로 그 숭고함을 표현해야 할까. 펄 벅만큼의 실력도 되지 않는 나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

 

 책 줄거리만 보고 단순히 슬픈 소설이 될 것이라 결론지었던 나의 성급함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내가 경험하고 있는 사랑이 영적인 사랑일지 생각해보는 순간이었다. 문득 노라가 집을 나간 후에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영적인 사랑을 만났을지 궁금해진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기초 조건은 결국 사랑이기 때문에. 나도 노라도, 우 부인만큼 멋진 여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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