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ilosophy

살다

예를 들어 상처가 났을 경우 몸이 보이는 반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는 것이다. "곧 혈소판들이 서로 엉기면서 출혈을 중단시켰다. 조직에 외부 세균이 침투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대량의 백혈구들이 상처 주위로 모였다" 등등. 이런 설명은 마치 혈소판이나 백혈구들이 의지적으로 이런 지능적 활동들을 해내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또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우리의 위와 장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그 일을 멋지게 해낸다는 식으로 말한다. 마치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듯이 말이다.

 

 

 

난 이렇게 생각 안 하기가 힘들더라.
지금도 피규어같은 게 살아 있다고 생각함.
그런 의미에서 팟캐스트를 듣다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접했는데 독일-한국 혼혈 10대가 고딩때 남친과 자신의 방에서 동거하겠다고 엄마에게 떼를 썼댄다. 집에서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서 학교에서도 보면 좋겠다나? 피규어를 사랑하면 그런 일이 없는 걸!

 

 나는 오늘도 시리즈의 마지막이다. 약간 데카르트의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한 게 아닌가 싶다. 사과나무에게 어느 정도 자율적 의지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은 단호하게 사과나무가 무언가를 원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오늘도 시리즈의 말하다 편이 떠오른다. 인간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하기에 자신의 의지를 전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동물과 식물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생명체가 영혼이나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더 나가서 생명체는 구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생명체의 후손이기 때문에 친척관계에 있다는 설명은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이 치킨을 먹는 건 자신의 친척을 먹고 있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나는 오늘도 시리즈 중 하나인 먹다를 떠올려볼 수 있다. 이렇게 살다는 이전의 시리즈들을 회상할 수 있게 만드는 최종편이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연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나는 오늘도 어느 편에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듯이, 여기서도 나오고 있다. 감정을 통해 세계와의 접촉을 유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쇼생크 탈출에서 끝끝내 자유를 갈구했던 죄수 주인공처럼 말이다.

 실로 오랫만에 식물원에 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일인지라 그 식물원으로 간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식물원을 벗어나 온천으로 가는 길에서 무덤들이 산재해 있는 곳을 만나서 상당히 놀랐다. 어찌어찌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소문을 들어보니 식물원은 좋아도 그 무덤길이 흉흉해서, 실제로 범죄까지 일어났다는 듯하다. 무덤은 대체로 방치되었지만 딱 하나에는 비석이 제대로 있었는데다 풀도 잘 정돈되었고 무덤 위 놓인 꽃까지 싱싱했는데, 강도의 소굴이 되다니. 관광객으로선 굉장히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깝다는 느낌이 든다. 그 강도들은 무덤의 비석을 유심히 봤을까? 아니, 자식이 저질렀다는 만행이 빼곡히 적혀 있었던 어느 어머니의 비석 하나라도 봤을까? 빨리 그 비석을 보고 반성하여 생명을 해치는 일을 중단하면 좋으련만. 문득 어머니의 무덤자리를 잘못 정해서 무덤이 물에 휩쓸려갈까봐 비가 올 때마다 개골개골 울었다는 청개구리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런 불상사도 있으니 아무래도 화장이 제일 좋겠지만, 살아있을 때 잘 해줄 것이지 죽어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때 비석은 요란하게 세워 뭣하리.

'Philosoph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티카  (0) 2017.12.1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0) 2017.10.29
버리다  (0) 2017.07.30
원하다  (0) 2017.07.27
말하다  (0) 2017.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