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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Development

땅에 계신 하나님

 

부모는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

김정원

그는 경주 남산 기슭에서 살았다 어느 날 골짜기에서 수달을 잡았다 살은 발겨 구워 먹고 뼈는 산기슭에 버렸다 이튿날 그곳을 지나가다 뼈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핏자국을 따라가 보았다 앙상한 어미 수달의 뼈가 옛 굴로 돌아가 새끼 다섯 마리를 끌어안고 쭈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길로 그는 출가해 이름을 혜통으로 바꿨다


이 글을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읽고, 나는 신열이 났다 늦은 밤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꾸 유의경의 세설신어에 나오는 단장의 고사가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진나라 환공이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장강을 따라 험준한 삼협 물가에 닿았을 때, 한 사병이 원숭이 새끼를 사로잡았다 어미 원숭이는 강 저편에서 새끼를 부르며 슬피 울었다 군선이 백 리도 채 못 갔을 때, 그 원숭이가 배 위로 뛰어내렸다 떨어지자마자 죽었다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모조리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수달, 원숭이, 넋 잃고 맹골수도를 바라보는 어머니, 죽은 예수를 안은 피에타의 마리아와 한 점 다를 바가 있으랴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어버이 마음이!

 

 

 

 SNS가 세상 사람들과 소통 창구를 열어줘서 좋은 점도 있지만, 똥같은 말들을 우연히랄까 어쩔 수 없이 거르지 못하고 텍스트로 봐야하는 부정적인 점도 있다. 옛날 사람들은 똥 묻었다면서 귀를 씻는다거나 귀머거리인 척 했다는데, 의도적으로 페이스북을 켰다가 페친에게서 똥 얘기를 들으면 쿨하게 넘어갈 수가 없는 것 같다. 눈을 씻어야 하고, 그 다음에 그 사람 프로필을 다시 한번 더 봐가면서 페친을 끊어야 한다. 페친이 4천이 넘어간 건 좋은데 페친 정리라는 게 아주 큰일이다. 7년째 하고 있는 블로그 쪽은 아예 손을 놓아버린 케이스고...

 

 아무튼 솔직히 말해 이번에 페친을 끊은 분들은 정치에 매우 관심들이 많다. 인간이 아닌 이데올로기를 너무 사랑하다 못해 누군가를 죽여버리겠다느니 심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자신과 이데올로기가 맞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을 비방한다. 부자가 아니라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심지어 댓글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비방하는데 이건 완전 지옥의 도가니다. 나보다 못한 인간 혹은 잘 되어가는데 예전엔 나랑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인간 혹은 만만해 보이는 인간들 때리기는 너무나 쉽다. 이데올로기를 핑계로, 정당을 핑계로, 매스컴을 핑계로. 그들이 대신 생각해주는데 뭐하러 우리 뇌로 직접 생각할 필요가 있겠냐는 거다. 그래서 사람들이 책은 안 읽고 양심도 없고 형식만 중요시하는 무뇌아로 변해가는 것이고. 정치를 진보계열로 정하고 하느님을 믿고 대학교 다니면 뭐해.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는데. 편견을 갖기는 싫은데 앞으로도 정치와 관계된 정의로운 페친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 같아 염려된다.

 

 

김정원이라는 시인 분께서 집주소를 좀 이야기해달라고 하셔서 왠지 자연스럽게 대답했었다.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다. 그런데도 정말로 책이 선물로 올 줄은 몰랐다. 다음 시집을 리뷰할 때도 이야기하겠지만 시집은 두 편이었으며 이 시집은 그 중 하나였다.

 

 

 윤영배라는 분은 시인이자 목사이시다. 가족의 이야기를 많이 꺼내시는 편. 목사님답게 예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노래하시기도 했지만, 유달리 자신의 가정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신 듯했다. 즉, 시를 짓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광주 사람들의 특성이 살아 있어서인지 진보 성향이 간간히 돋보인다.

 전에도 소개한 김정원 시인은 누군가를 가르치고 훈계하는 교사의 속성이 강했든데(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가르친다는 건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최근에 부정적이 되었을 뿐이지.) 이 시집에선 더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기독교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대부분이며, 정말로 '기독교인들에게'라는 제목의 시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신발의 '신'과 하느님이란 뜻의 '신'을 이중적으로 뭉뚱그려 시를 지은 점에선 그가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이 이 중 가장 비상하다 할 수 있겠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있지만 그들은 다 땅에 뿌리를 담고 있다는 '같은 종교에선'이라는 시에서는 땅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이 시집의 제목과 연결되는 구석이 있었다. '어쨌던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신을 믿고 있으니 쓸데없이 우겨대서 종교 전쟁 일으키지 말고 고집을 좀 꺾어서 일상에서 좋은 일을 실천하자'라는 메세지가 있다고 나는 보았다. 제대로 읽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요새 신자와 비신자들의 관계가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만일 철학을 신봉하고 있어서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주의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요컨대 새끼발가락 끝부분만 보여줘도 쉽게 그쪽에 대해서 믿음을 품는 인물들이 많은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요새는 하나님이 있다는 맹신에서 어쨌던 간에 신은 있겠지 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쪽으로 점점 돌아가는 중이지만, 내 냉담의 이유는 좀 보기 거북할 정도로 독실한 신자들과 가까이 있기가 괴로워서이기도 하다. 자꾸 극단으로만 가려 하지 말고 반대쪽 극단도 의식하면서 그들의 의견도 경청할 때 세상은 좀 더 좋은 길로 향한다고 생각한다. 이 두 저자 분이 종교인이면서도 나름 '철학'을 받아들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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