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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노동자의 이름으로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약삭빠르게 살라는 말이냐구요? 난 당당하게 세상을 살고 싶은데 왜 형님은 움츠리고 눈치 보며 살려고 합니까? 형님이 현실을 보라고 하지만 그 현실은 죽어 있는 현실입니다. 죽은 현실이 보여주는 걸 배우라고요? 고기 한 점 던져주면 그거 집어 먹는 맛으로 살라구요? 그게 아는 겁니까?"

 

(...) 봉수는 소주잔을 치우고 물컵에 술을 콸콸 따라서 단숨에 들이켰다.

 

 

물론 모든 인간을 믿어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의심병에 걸려 오버해도 이상한 인간이긴 매한가지다 ㅋ

 

어찌 옛날과 오늘이 한치도 다를 바가 없는지 책을 읽고 자괴감이 든다. 자동차 공장 다니면 여자가 싫어할 거라고 하는데 난 혼자 잘 놀고 어차피 애를 안 낳을 거라서 늦게 돌아와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ㅇㅇ. 돈이야 뭐 나도 쥐꼬리만큼 벌 처지일텐데. 단지 힘들다고 술에 쩔어 들어오면 속상해서 화를 낼 듯. 아무튼 남자 냄새가 저자가 쓴 기존 소설보다 훨씬 강하게 나는 책이다. 요즘 하도 페미니즘 책을 많이 봐서 가끔 이런 책을 읽는 것도 새롭고 나쁘진 않은 듯하다 ㅎ. 요즘 90년대 마초 애니가 그리운데 여성차별 발언이 싫어서 꺼려지는지라, 대타로 보기로 하기도 했고. 참고로 이 저자는 페미니즘 소설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여성차별 발언이 매우 적은 편이다.

 

나는 스스로도 '강남'좌파라 인정했던 조국을 위해 촛불 들고 거리에 나가 집회하고 싶지 않다. 노빠들이 까는, 웃통 벗고 시위하는 톨게이트 직원들과 합류하고 싶다. 아니면 차라리 몸뚱이를 반씩 나눠서 둘 다 뛰던지. 사실상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나도 현재 다니는 대학교에 대해 놀림을 많이 받는 편이다. 대체로 'OO대학교 다니시느라 힘드시겠어요'라고 하면 뒤에서 피식 하는 소리가 들리는 편이다. 뭐 날 잘 아는 친구도 아니니 냅두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옛날 내 뒤에서 '쟤 OOO대학교 다닌대요'라고 누군가 말할 때 뒤에서 우와~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는 딴판이다.

'서울대학교 다니는 인간이 요새 청소부 면접 본다더라'라는 말이 세상 어렵단 뜻을 함축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그들은 뭘 해도 이상한 소리만 내뱉지 않음 취직할 것이다. 워낙 학생을 적게 뽑아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졸도 희소성이 있다 말하는 사람이 있던데 대체로 고졸들은 마음에 열등감을 깊이 품고 있는 부류이다. 아무렴 서울대학교 다니는 사람들이 남들 다 하는 거 나는 왜 안 하나 이런 생각은 안 들지 않겠나. 조금만 실수해도 쟨 고졸이라서 그래라는 말 듣는 것하고 조금 실수해도 서울대학교 나온 사람도 사람이니까라는 말 듣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대학도 간 공무원이 그러는데 아니 진짜 답답해서 다시 머리가 아파오네. 빈유가 스테이터스란 소리랑 뭐가 달라(...) 작중에서 그 말한 인간도 하도 작다는 소리 들으니까 자기 혼자서 자신감 높이려고 그런 거라고 ㅡㅡ) 서울대학교 교수는 어딜 가서 무슨 발언을 해도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사실 서울대를 가야 교수 안전빵에라도 든다. 난 지금 거리에 나온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다. 현재의 나는 안정적인 대학교를 이미 버렸기 때문이다.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스스로가 단단해져야 하겠지만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 거라 생각해야 자신의 신념대로 나아갈 수 있다. 설령 지금 당장 정말로 한 명도 자신을 돕지 않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섬끝마을은 십 년 전만 해도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새벽안개가 흐르고 염분 냄새 짙은 바람과 햇볕이 좋던 아늑한 곳이었다. 횟집도 많지 않았고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적었다. 그런 한적한 어촌 마을이 드라마 촬영을 두어 번 하고 나서 유흥가로 변해갔다. 슬렁슬렁 몇몇 무리가 마을을 드나들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횟집이 늘고, 찻집도 생기고, 파도 소리를 파는 파도 소리 체험관도 생겨났다.

 

 

언젠가 '미국 땅이 니네 꺼냐? 애초에 동물들이 인간과 같이 사는 곳인데 여기가 니꺼내꺼가 어딨냐?'라는 내용으로 인디언이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참 맞는 말이다. (근데 동물도 죽일 줄 꿈에도 몰랐겠지 ㄷ) 바닷가에 왔음 되었지 왜 굳이 파도 소리를 돈 주고 들어야 할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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