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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Nuturition

그 꿈들

텔레비전에 나오는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은
다음 주면 공격을 시작할 거라고,
달이 차오르는 날 폭격을 할 거라고,
그 전에 항복을 하라고 이 나라의 독재자에게
더 심각한 얼굴로, 더 무서운 말들을
쏟아 냈습니다.

 

 

 

 

그냥 출간행사겠지 싶어서 설렁설렁 서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일단 서점에 걸려있는 유화가 압도적이었다. 일단 무거운 그림이었고, 굉장히 이국적이었다. 나중에 읽으면서 이라크가 배경임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책의 그림을 그리신 김종숙 씨는 잡일(덕장)을 하시며 담배, 소주, 맥심 커피만 있음 언제든지 작업을 하시는 분이셨다 한다. 그러다 현재는 문화재보수기술자로 일하고 계신 저자 박기범 씨를 만났고, 이라크에서 10년간 살면서 기록한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만다. 그래서 글을 쓰라고 권고하고, 마음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글을 쓰기로 결심한 저자가 이라크에서 찍은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과 책자와 영화와 다큐를 보여주셨다 한다. 대부분 그 자료들을 참조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시장에서 포탄이 떨어져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화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그림이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나는 바위를 감싸고 흐르는 강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권정생 씨의 글에도 삽화를 그리셨던데, 아무래도 진지한 그림을 좀 더 잘 그리시는 듯하여 난 이 그림책으로 김종숙 씨의 그림을 보길 추천하고 싶다.

 

 

 

 

정의의 용사라는 가면은 얼마나 무서운가.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적으로 지정하는 '지독한 악당이 사는 나라'의 아이들도 공차기를 좋아하고, 동물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은 독재자가 있는 나라의 돈과 자원이 탐나서 그들의 잘못된 역사를 고쳐주는 척 하면서 전쟁을 일으킨다. 갖가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전쟁에 참가하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미국 남성은 총을 들고 아이들을 쏘면서 점차 죄책감에 망가져간다. 한편,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사는 이라크 사람들은 전에 벌어진 몇 번의 전쟁 경험으로 인해 내국에선 어디로도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잘 알고 그렇다고 해외로 갈 돈도 없기에 자신이 살던 곳에서 그저 벌벌 떨면서 어제 같은 날이 이어지기만을 바란다. 평범하게 살기란 너무 어렵다. 아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가족들을 도와줄 것을 이웃 사람들에게 청하는 장면에선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던 여성은 피투성이가 되어 편의점으로 전력질주하는 다른 여성을 보자 본능적으로 문을 잠그고 화장실 가는 척을 했었다. 그리고 그 피투성이 여자는 그녀를 쫓아오던 한 남자에게 잡혀 처참히 죽음을 맞는다. 사실 그 알바하던 여성이 무슨 죄겠는가. 근처의 경찰이 좀 더 제대로 일했다면. 편의점 본사가 알바생과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지킬 궁리를 좀 더 일찍 했더라면. 마치 전쟁과 같이 팍팍한 삶을 사는 자본주의 국가가 우리나라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마치 좀비물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는데, 확실히 좀비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이는 '저럴 땐 군인이 되는 게 가장 편해'라고 나에게 말했다. 살아남는데엔 편하겠지만 죄책감을 느껴 다시 이라크로 돌아올 때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면, 그 군인의 마음은 편할까? 이라크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마음에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건 변하지 않으리라. 군인이 아이들에게 자신은 포탄과 총알을 날렸지 돌을 날리지 않았다고 울부짖을 때는 마음이 짠하다.

 자살 테러에 대해서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해놨다. 부모자식을 잃어서 분노한 사람들이 미국에 반발하여 전쟁을 벌이려 하지만, 착한 사람들은 착한 전쟁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책에서는 주장한다. 전쟁이 불러오는 것은 전쟁 뿐이라는 것이다. 열매가 익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기다릴까? 이는 자연보호와 평화와 좀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바라는 모든 활동가들의 숙제일 것이다.

 

 

 

책에 담겨진 삽화와 행사장에 걸린 그림을 비교해보니 같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차이가 났다. 화가는 가격을 조정해야 하는지라 그림의 질을 다 담아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설명했다. 될 수 있으면 이 책도 사고, 전시회도 한 번 가보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화를 많이 진열하시는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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