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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중에서

 

 

너 그때 버스 터미널 지나오며 뭐라고 했지?

 

버스들이 밤이 되니 다 잠자러 오네 그랬어요

 

너 일부러 순진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두사부일체 보면서 한 번도 안 웃었지?

 

웃겨야 웃는데 한 번도 안 웃겨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잘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도미회 장식했던 장미꽃 다 씹어 먹었지?

 

싱싱하니 내버리기 아까워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이상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진정한 시의 달인 여기 계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으므로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사연 끝에 정중히

 

호 하나 달아드리니 son of a bitch

 



 


 

버스들이 잠자러 오겠지 그럼 섹스하러 오겠냐.


개그콘서트 그런거 조또 재미 없다는데 왜 웃음을 강요하냐 니가 웃겨서 웃다 눈물날 듯.

그리고 돈 없고 배고플 때 우리 어머니도 꽃 먹으셨다고 하고 조선시대엔 화전 부쳐먹는 노래도 있는데 그럼 우리 어머니와 조상들 다 미친년들이냐.

누군진 몰라도 남자 새끼 피해의식 쩌네요. 아 성차별 발언 ㅈㅅ. 역시 한국남자가 욕이라 하는 한국남자답습니다요 ㅎㅎ 시인 본인인지 다른 사람 에피소드와 섞은 건지 모르겠지만 헤어지길 백만번 잘한 듯.

 

스토리텔링 시는 질렸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집은 에세이같은 스토리가 아무래도 메인인 듯하다. 오히려 없으면 허전하다고 할까. 여자의 삶 자체가 한국에선 별난 일이라는 게 표본이라는 듯, 시인의 어떻게든 남을 웃겨보려는 듯한(소위 남자들에겐 인기 없는) 익살 속에 기이한 일들과 풍자가 살살 녹아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중에서

처음 극장이란 델 가서 본 영화가 개 같은 내 인생이었다 하필 그랬다 중학교 1학년을 단체 관람 시킨 도덕 선생님은 전교조였다 하필 그랬다 (...) 침대에 벌렁 누워 영화나 보는데 어디선가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 (...) 우리 개가 아랫집 개를 물어 죽이고 어디로 내뺐다는데...... 그 집 연놈들이 씩씩거리며 문 차고 들어와서는 날 아주 잡도리하듯 그거이 참...... 개를 찾아 개보고 나보고 사과를 하러 오라지 않수...... 이 비에 그니까 비가 와 개새끼가 미쳤나...... 생돈 십만원 물어주고 내 속이 쓰려 술 한잔했시다 (...) 며칠 지나 시인 지망생 후배 몇이 보신 약속을 잊었느냐 해서 불광동 개고기집엘 끌려갔다 하필 그랬다

 


 

길이가 좀 있어서 중간중간 잘랐지만 끝까지 보면 더 재밌습니다 ㅎㅎ

 

나미가 나비를 부를 때 중에서

개그우먼이 되기에는 썰렁함밖에 재주 없는 소녀에게 재주라곤 제 얼굴이나 뜯어 먹는 일, 하여 한 입 두 입 솜사탕처럼 달착지근한 살점이 소녀의 엄지검지손가락에 들러붙었고 그걸 핥기 위해 고양이는 제 키보다 더 긴 기지개로 잠이 깨기 시작했어요 나비야, 나비야...... (...) 허나 우는 고양이를 내 젖으로 달랠 수는 없는 일, 우는 고양이는 고양이라서 괜찮지만 너무 우는 고양이는 고양이라서 혼이 날밖에요 지금 집집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튀김 솥이 끓고 있을 거예요 펄펄 끓는 식용유에다 슛! 이렇게 집어던져질 때 고양이에게 죽음이라 하면 그 잔뼈가 오독오독 씹힐 때야 비로소 제 뼈가 관절염에 좋다는 걸 아는 일일 터

 

 


사실 노래가 주제라서 맨 끝에 이 시를 올리지만, 가장 인상적인 주제요 시 구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각적인 면을 굉장히 잘 묘사해서 상상을 자극했다고 할까. 여성은 고양이에 많이 비유되는데, 그들의 삶은 길거리에 있을 땐 상당히 비참해진다는 데선 공통점이 있을 듯하다. 요새 그런 해석도 많고 말이다.

 

예상 밖의 효과

 

 

한겨울에 강원도의 아이들이

 

북어를 가지고 칼싸움을 한다

 

소리가 제법 칼이다

 

그렇게 믿고 또 휘두른다

 

칼에게 칼날이 전부이듯

 

북어에게 최선은 몸통이다

 

국으로 끓여 아침 식탁에 올리면

 

몸 푼 동생이 가장도 아니면서

 

가장처럼 먼저 한술 뜨는 이유,

 

젖 도니까

 


어디선가 덜 두드리면 18K이고 더 두드리면 24K가 된다는 이과문과 상관없이 심각하게 싫어할 만한 짤을 본 적이 있다. 이 시가 그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싫지 않은 이유는 뭘까. 시인의 묘사일까, 아님 비유의 적절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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