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em&Essay

내가 훔친 기적

장도리 든 자 중에서


#. 0

아버지가 방에 못을 박는다 밥통에도 달력에도 시계에도 신발에도 창문에도 못을 때려 박는다


그만하세요 아버지 제가 볼 땐 왼쪽도 오른쪽도 위도 아래도 구멍뿐인데요


(아버지가 자식의 어깨를 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얘야, 나는 세상천지에 무서운 게 없단다


#. 만성피로

(피디 아들과 악수하지 않음) '온 집안에 못을 박은 아버지, 과연 무슨 사연이 있을까?'라는 주제로 15분에서 25분 분량의 방송을 만들 겁니다 물론 못 박힌 집에 대한 미학적 가치를 평가해 줄 교수도 섭외된 상태입니다 아니오, 평소에 입는 옷으로 부탁드려요 아니오, 화장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전에 내 페친 중 하나가 오타쿠의 방을 보고 결핍증 있는 정신병자같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 굿즈 중에선 정말 비싼 게 많다는 점에서 일부 인정한다. 그 중 하나가 가로라는 전대물 시리즈이다.


나도 전대물 중에선 가로를 제일 좋아하지만, 솔직히 전설적인 초창기와 아주 최근 한국인 감독이 제작한 가로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그닥 잘된 시리즈가 없는 게 사실이다. 지금 가로는 완전히 애니메이션으로 빠진 것 같은데, 그도 그럴게 여태 나온 스토리가 전부 완성도 부족이었고 무엇보다 갑주 설정 자체가 현실적으로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고퀄이기 때문이다. 실제 피규어도 재질에 따라 상당한 가격차를 보인다. 내용도 어린이는 물론 비위 안 좋은 사람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잔혹물이다. 가면라이더나 파워레인저에서 1화부터 대뜸 내장이 벽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상상해보시라. 그래서 가로는 갑주를 입도록 도와주는 반지 성우를 토대로 하여 빠찡코를 만들었고 이게 또 성공했다.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빠찡코를 돌렸겠지만, 가로는 원래 마계기사고 인간이 가로를 계승하면 그리 오래 못 산다는 설정에서...;;



 

 


 

처음에 읽을 땐 아버지가 가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고 방송이 그런 가족들을 맥락도 없이 불쌍하게 보이도록 촬영하여 아들이 자살하는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번 읽어보니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는 듯했다. 아버지는 그로테스크 미학을 추구하는 예술가이고 어머니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와 그의 예술성을 이해해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두 내용이 교차하는데 둘 다 맞는 것 같기도 한 시들이 가끔 보인다. 그 점에 있어선 상당히 독특한 시집이었다.


좀 흔한 시로 볼 수도 있겠지만 여성 아이돌을 여자가 아닌 아이들로 본 데서 시인의 따뜻함이 전해져 온다. 최근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 여성들을 암캐라고 비하하는 사람들을 볼 때 더욱 대조가 된다. 여성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보는 데서는 성녀와 마녀, 아이돌과 암캐라는 단어가 모두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남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남녀 차별이라 불릴 수도 있겠으나, 82년생 김지영이란 책을 좋아한다고 말한 '아이돌'의 굿즈가 무참히 파괴되는 반면 여혐 발언을 한 '가수'가 유투브에서 당당하게 잘 나가는 걸 보면 그런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본다면 말이다.




 


 

내 옷이 은근 명품 옷이라느니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난 이렇게 말한다. 아주 운 좋게 잘났던 집에서 태어났고 우연히 돈을 좀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래서 아무 생각 안 하고 옷을 샀다고.


사실 패션감각이 없어서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맡기지만. 그래서 사실 벽2의 시 같은 인생은 그닥 살아본 적이 없다. 가방도 막 다루고 안에 술 넣고 다님 ㅋ 이런 거 신경쓰기 너무 귀찮아서.

사실 벽1이란 시에 거인도 나오는데(진격의 거인) 벽2가 더 마음에 든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비춰준달까.


시 전반에 동화같은 면모가 있다. 한 10년 전쯤 유행했던 잔혹동화들을 적절하게 빌려서 사회를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다. 짐작하는 것처럼, 대부분이 여성 차별을 다루고 있다.

 

집으로 가요 중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마법사가 찾아와 날개 달린 신발이나 유혹 점수를 높이는 코르셋을 팔았다 코르셋을 입은 공주가 어둠의 파티에서 누굴 만났는데...... 집사와 용사, 공주가 돌려먹던 얼음이 또 다른 공주의 입속에서 와자작 부서지면 두더지 왕자는 흥에 겨워 벌주를 만들었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언제까지 웨이브를 타게 할 거야? 여름과 겨울에 한 번씩 공주와 단둘이 휴가를 떠났다 용사는 그때마다 치트키로 공주의 젖가슴을 확인했다 우리 딸, 얼마나 컸는지 아빠가 좀 보자...... 학교에서나 광장에서나 엔딩은 성큼성큼 공주들을 찾아왔다 열여덞 살에 사기꾼이 되거나 아버지와 결혼한 공주들은 전부 용사의 호적 등본에 기록되었다

 


최근엔 그래도 이런 남자 없는 걸로 알고 있지만.. 이런 증상 보이는 남자와는 그냥 빨리 깨지세요. 여자들이 뭐 어쩐다고 갱생되는 것도 아니고 정신 안 차리는 놈들은 복수한다고 되려 여성 죽이려 듭니다 ㅋㅋㅋ 제가 겪어본 일이죠()

 

'Poem&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은 눈이 내 얼굴을  (0) 2019.02.17
곡면의 힘  (0) 2019.02.07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0) 2018.12.23
다산의 처녀  (0) 2018.12.07
사랑할 때와 죽을 때  (0) 2018.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