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해요. 내가 울지 않으면 사람들은 내가 아파하는 것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나를 아프게 하지도 못해요." 심리학개론 교수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사람의 마음을 파악할 수 없기에, 여태 심리치료를 공부해왔지만 아직도 그 효과는 믿지 못하겠다는 솔직하면서도 씁쓸한 고백. 옛날보다 더욱 감정에 메마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 중에는 생존에 위협이 될 만큼 메마른 환경 속에서 무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숟하게 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느꼈던 감정의 경험에 의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이란 이미 문학에서는 퇴물로 평가받고 있으나, 감정이해에 대해선 그만큼 솔직한 진실됨이 없을 것이리라. 과제로 인해 '한 아이'를 보던 중 나도 그 감정이입을 어렴풋하게나마 겪었으며, 쉴라의 아픔에 저마다 나름대로 공감했던 아이들의 울음처럼 나도 또한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녀에 비해선 아주 적은 편이었지만 나도 소외를 겪었으며, 그로 인한 스스로의 자기방어와 좌절감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부모에 의한 소외는 내가 모르는 것이었으며, 나름대로는 부유한 환경에서 살아 본 적도 있다. 책에서도 전해주듯이 6살짜리 주인공 쉴라는 너무나 지독한 일을 겪었고 너무나 성숙해져 있었으며, 너무나 지쳐있었다. 2권의 전반적인 내용에서도 그녀가 품고있는 독기는 조금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변하지 못했다. 1권에서 희망적으로 끝날 것 같았던, 아니 '우리가 기대했던' 미래와는 달리 2권에서조차 쉴라는 도움이 필요했고, 이 책을 쓴 저자 토리와의 유대관계를 잊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것 또한 몸서리쳐질 정도로 지독하 면서도 섬뜩한 현실이었다. 7년 후의 그녀가 말했던 '환경이 변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인간'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성할 수 없었지만, 또한 여전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쉴라는 그 이후 다시 토리선생님을 만날 때까지 여 전히 변하지 못했고,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2권의 내용은 쉴라에 대한 내용보다는 아이에게 걸었던 지나친 의존에 대한 토리선생의 반성과 그들이 1권에서 겪었던 이야기에 대한 힘겨운 싸움, 기나긴 대화, 그리고 특수지도에 대해 마음을 굳히는 이론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결국 1권에서 등장하는 토리와 쉴라의 관계에 대한 정리였으며, 나는 다시 1권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버린 아이의 섬뜩한 말투는 어느 구절보다도 가장 인상깊었으며, 책을 내려놓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마음 속에서 맴돌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점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토리선생님과 쉴라간의 관계였다. 토리선생도 인정했다시피 그 둘은 명백히 교사와 학생사이 이상이었으며, 가끔은 친구관계의 선을 넘나들며 갈등하기도 했다. 이 점은 독자들에게도 토리 주위의 선생님들한테서도 문제점이라 지적받는 사실이었다. 쉴라도 토리선생님에 대한 애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나, 토리 또한 그러했다. 쉴라에게나 토리에게나 그 둘의 만남은 그만큼 인상적인 것이었고, 그만큼 헤어짐은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비록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쉴라가 좋은 환경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났더라면하는 절절한 마음을 책 속에서 여러번 표시한 바가 있다. 그만큼 책 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쉴라는 사랑스러웠고 총명했다. 어쩌면 그녀는 존재자체가 무시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총명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녀는 세상을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었다. 토리선생님의 말처럼 그녀는 충분히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자신의 환경과 맞서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 둘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쉴라가 말로서는 절대 가르치지 못할 근본적인 감정에 대해서 배우는 데에 토리선생님의 애정이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었다. 교육적인 면에 대해서는 약간 틀어졌을지도 모르나 확실히 그 둘의 사이에는 시험에서 평가될 수 없으며 따라서 절대 배울 수 없는 '기초적인' 무언가에 대한 긴장이 더욱더 팽배했다. 그녀에게 산수와 언어공부란 거의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발달에 고착된 점이 있었을지 몰라도, 정서에 대한 고착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도 정서의 고착으로 인한 살인이 얼마나 많은가. 그녀는 토리선생을 만나기 전에는 동물들과 어린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그들에 대한 심정을 알 수 없기에 또한 자신의 속에서 자라났었던 죄책감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인간의 이기심이란 얼마나 잔인하단 말인가! 그녀에게 옳고 그른 것을 깨닫게 하기도 전에 그녀의 아버지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취급했으며, 그 어린 아이를 주립정신병원에서 시들게 만들 뻔했다. 단지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내가 보기에 그것은 6살 아이에 대한 사람들의 명백한 정신폭력죄였다. 만일 쉴라가 토리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른들이 으레 그렇게 말하듯 사회가 본래 냉혹한 성격을 가졌다고 함으로서 그 죄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 그 책을 읽는 독자 중 적어도 나 하나만큼은 토리선생의 분노를 이해했다. 책 속에서 번번히 등장하는 시니컬한 말투는 여전히 사회 속 비정상적으로 모자라는 사랑의 마음에 대한 그녀의 억눌린 분노였다.
다행히도 그녀는 그 책에서 나오는 짧은 시간동안 많이 성장해나갔다. 작게는 토리선생님이 하루동안 그녀에게서 떨어져있는 시련, 크게는 7년동안 아버지 밑에서도 자라지 못하고 어린이집에서 살아가는 등의 시련을 겪었으나 그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참는 법을 배웠으며 시험과 언어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즐거움에 대해서도 배웠다. 식물 앞에서는 가슴이 커질 정도의 기쁨을 누렸으며, 한 줄기 햇빛 속에서도 즐거워하며 춤을 추는 법을 배웠다. 나는 2권에서 나오는 이야기보다는 1권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울고 웃었으며, 그동안 나를 사랑해준 많은 사람들과 내 안에 품어왔었던 감정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특수아동들과 놀이치료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에 대한 책을 많이 보아왔으나, 의학적이고 형식적인 지식 없이 아이와의 교류를 소설처럼 그대로 드러낸 책은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나에게는 더욱 적나라한 내용이기도 했다. 2권에서 가끔 드러나기도 했던 특수치료에 대한 토리선생의 현실적인 고려들은 사실상 내 경우의 어려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소외당한 아이들을 많이 보아오기도 했고 나 자신 또한 어린시절 겪었던 일이었기에 그 심정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들에게 일단 지나친 공감을 가지게 될 시엔 아이들이나 나 자신이나 독립적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앞으로 내 아이를 기르게 될 시에도 상당히 고민하고 연구해봐야 할 만한 내용이라 생각했다. 이런 책이 드물다는 몇몇 평가들이 내 부끄러운 무지를 어느정도 덮어주기는 했다. 그 책은 결국 과제와 같은 형식적인 이득에서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점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토리선생님과 쉴라간의 관계였다. 토리선생도 인정했다시피 그 둘은 명백히 교사와 학생사이 이상이었으며, 가끔은 친구관계의 선을 넘나들며 갈등하기도 했다. 이 점은 독자들에게도 토리 주위의 선생님들한테서도 문제점이라 지적받는 사실이었다. 쉴라도 토리선생님에 대한 애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나, 토리 또한 그러했다. 쉴라에게나 토리에게나 그 둘의 만남은 그만큼 인상적인 것이었고, 그만큼 헤어짐은 너무나 급작스러웠다. 비록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쉴라가 좋은 환경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났더라면하는 절절한 마음을 책 속에서 여러번 표시한 바가 있다. 그만큼 책 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쉴라는 사랑스러웠고 총명했다. 어쩌면 그녀는 존재자체가 무시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총명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녀는 세상을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었다. 토리선생님의 말처럼 그녀는 충분히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자신의 환경과 맞서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 둘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쉴라가 말로서는 절대 가르치지 못할 근본적인 감정에 대해서 배우는 데에 토리선생님의 애정이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었다. 교육적인 면에 대해서는 약간 틀어졌을지도 모르나 확실히 그 둘의 사이에는 시험에서 평가될 수 없으며 따라서 절대 배울 수 없는 '기초적인' 무언가에 대한 긴장이 더욱더 팽배했다. 그녀에게 산수와 언어공부란 거의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발달에 고착된 점이 있었을지 몰라도, 정서에 대한 고착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도 정서의 고착으로 인한 살인이 얼마나 많은가. 그녀는 토리선생을 만나기 전에는 동물들과 어린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그들에 대한 심정을 알 수 없기에 또한 자신의 속에서 자라났었던 죄책감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인간의 이기심이란 얼마나 잔인하단 말인가! 그녀에게 옳고 그른 것을 깨닫게 하기도 전에 그녀의 아버지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취급했으며, 그 어린 아이를 주립정신병원에서 시들게 만들 뻔했다. 단지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내가 보기에 그것은 6살 아이에 대한 사람들의 명백한 정신폭력죄였다. 만일 쉴라가 토리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른들이 으레 그렇게 말하듯 사회가 본래 냉혹한 성격을 가졌다고 함으로서 그 죄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 그 책을 읽는 독자 중 적어도 나 하나만큼은 토리선생의 분노를 이해했다. 책 속에서 번번히 등장하는 시니컬한 말투는 여전히 사회 속 비정상적으로 모자라는 사랑의 마음에 대한 그녀의 억눌린 분노였다.
다행히도 그녀는 그 책에서 나오는 짧은 시간동안 많이 성장해나갔다. 작게는 토리선생님이 하루동안 그녀에게서 떨어져있는 시련, 크게는 7년동안 아버지 밑에서도 자라지 못하고 어린이집에서 살아가는 등의 시련을 겪었으나 그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참는 법을 배웠으며 시험과 언어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즐거움에 대해서도 배웠다. 식물 앞에서는 가슴이 커질 정도의 기쁨을 누렸으며, 한 줄기 햇빛 속에서도 즐거워하며 춤을 추는 법을 배웠다. 나는 2권에서 나오는 이야기보다는 1권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울고 웃었으며, 그동안 나를 사랑해준 많은 사람들과 내 안에 품어왔었던 감정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특수아동들과 놀이치료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에 대한 책을 많이 보아왔으나, 의학적이고 형식적인 지식 없이 아이와의 교류를 소설처럼 그대로 드러낸 책은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나에게는 더욱 적나라한 내용이기도 했다. 2권에서 가끔 드러나기도 했던 특수치료에 대한 토리선생의 현실적인 고려들은 사실상 내 경우의 어려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소외당한 아이들을 많이 보아오기도 했고 나 자신 또한 어린시절 겪었던 일이었기에 그 심정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들에게 일단 지나친 공감을 가지게 될 시엔 아이들이나 나 자신이나 독립적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앞으로 내 아이를 기르게 될 시에도 상당히 고민하고 연구해봐야 할 만한 내용이라 생각했다. 이런 책이 드물다는 몇몇 평가들이 내 부끄러운 무지를 어느정도 덮어주기는 했다. 그 책은 결국 과제와 같은 형식적인 이득에서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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