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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Comics

젤리와 만년필 3호

한 소설가가 내가 잠든 사이 성행위를 시도하려 한 바 있었다. (...) 친구가 어떤 지방 소도시로 놀러 가지 않겠냐고 했다. 그곳은 그 친구와 내가 함께 들었던 대학 창작 수업의 선생님이 계신 곳이었다. (...) 모두 술에 거나하게 취했다. (...) 내가 잠든 사이 하의가 벗겨져 있었고, 그 선생은 물리적인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 '...해야만 끝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행위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동조는 아마도 보통 "너도 원했잖아"로 치환되어 버리고 말겠지. (...) 또 다른 한 친구와 만나 어렵게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좋았겠네" "멍청한 놈, 줘도 못 먹냐?" 같은 반응이 돌아오자, 나는 정말이지 주먹을 쥐고 그 친구의 얼굴을 때리고 싶었다. 그날의 그 일은 성폭력이 맞았다.

 


  

내가 본 책 중 최초로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당했단 증언이 나왔다. 말로는 들었지만 텍스트로 적힌 이상 좀처럼 나올 수 없는 귀중한 발언이라 옮겨 적고 다른 곳에도 이야기할 예정이다. 그만큼 여성에게 성폭행 당한 남성들에게 미투를 행할만한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미투하면 신상만 까발려지고 가면이 벗겨질 텐데 괜찮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미투하는 사람들이 그걸 모를지 의문이다. 애초에 사회에서 매장당할 것을 다 각오하고 시작한 게 미투다. 그리고 난 사회에서 항상 성추행 당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딱히 가면을 쓴 적도 없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다. 그리고 왜 페미니즘이 어두운 구석이 있어서 싫다고 생각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페미니즘의 어두운 면이 대체 무엇인진 모르겠는데, 아마도 남자한테 성추행이나 폭력을 당해봤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남성이 가하는 것이고 여성이 당하는 그 사실 자체만 본다면 그건 여성에게 왜 앉아서 당하고 있었냐고 묻는 것과 진배없다. 그리고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고? 미투를 한 여성은 현재형이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여성들을 걱정하며 그들에게 당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 충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에게마저 페미니스트들은 항상 이런 말을 듣고 있다. 어떻게 이 상황이 페미니즘의 유행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다못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고 한국 사람들 모두가 생각하는 위안부 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일본 총리에게 사과라도 받았나? 대체 페미니스트들이 뭘 했다고 이 난리란 말인가?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를 너무나 심각하게 걱정해서 그런지 아직 아무도 산후우울증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나이들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해서 애기를 낳아야 한다나. 아직도 자신에겐 우울증도 어떻게 낳아 길러야 하는지도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그 힘든 과정을 얘기해 주는 단 한 사람도, 단 한 개의 교양서적이나 교과서도 없었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다. 복지가 발전했다는 이 시대에, 그게 그저 노오력해서 극복해야 할 일인가. 욕구하는 사람들도 자원도 다 있는 마당에 말이다.

 

그러나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면 정말 매번 패턴이 똑같아서 아쉽다. 여성이 성추행을 당한다고 말하면 일반 한남들은 남자들도 당한다고 한다. 그러면 미투를 해서 알리면 되지 않느냐? 라고 물어보면 남자들의 목소리가 작다고 우물거린다. 그럼 남자들도 피해를 공개해야지, 하면 거기서 아예 대화가 끝나버린다. 미투를 하면 권력을 얻지 못한다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애초에 여성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닌데,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는 부당한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일 뿐인데 페미니즘 하면 남혐 및 여성의 피해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페미니즘은 이성을 잃은 집단일 뿐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항상 헤어질 땐 집 튼튼한 것으로 장만하던가 좋은 남자를 만나 같이 살랜다. 애 낳으려고 결혼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여자는 개죽음 당하지 않기 위해 결혼해야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대체 누가 이성을 잃었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그런 부류의 대화에서 벗어나질 못하네. 일침을 날리고 싶은데 말재주도 없고, 길어질 것 같아서 오늘도 침묵하는 내가 부끄럽다.

 

개가 짖는다. 어떤 사람이 우리 집 개를 조용히 하게 해 달라며 경비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했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목 수술을 생각하고 난 진지하게 입마개를 고려했다. 알고보니 우리 집 개 랑이는 인간들이 일으키는 소음에서 자신과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짖었던 것이다. 그러나 말을 못하는 암캐 랑이는 자신을 변호할 권리조차 없다.

 

청혐이라고 한다. 나는 청년 혐오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청소년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집에서 나가면 공부를 할 수 없고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집에서 나가라 수시로 협박한다. 청소년들에게 중2병이라는 누명을 씌운다. 시끄럽다며 입을 틀어막거나 멀리한다. 어른들은 이제 모두 합심하여 그들을 혐오한다 말한다. 자신이 청소년 시절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그 과거를 알고 있는 부모님들은 나이를 먹어 노약자가 된 것이다.

 

그나저나 신여성 전시회인가 뭔가 망했다는데 진짜냐 ㅋㅋㅋ 어쩐지 다녀온 사람들이 페미니즘 거론하면서 아직도 안 변했네 이런 말 하길래 '역사 전시회 아님요?'하니까 분위기 급 싸하게 식더라. 페미니즘 팔이 그만 좀 합시다. 이러니 페미니즘으로 얼마 버냐는 소리 나오지. 난 신여성들의 업적을 보고 싶지 그딴 X털같은 옛날 한남들이 진보여성 까는 소리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님. 미친놈들 소리 이제 그만 듣고 싶기도 싶기도 하고.

그리고 그거 신여성 잡지라는 거 하나로 시작했을 거 아님? (아마도 잡지 창간자 남성.) 그럼 신여성 잡지 싫어하던 나머지 한국 여성은 구여성임? 기왕 전시회에서 페미니즘 하려면 그런 여성의 일상생활도 실어줘야 하지 않나. 내가 페미니스트이지만 그래도 여성이 페미니즘 하지 않는다고 까는 거 너무 싫음.

 

한남들은 요새 여자가 절대 남자보다 약할 리 없고 여자도 남자 덮칠 수 있으니 밤에 뒤따라 걷는 남자 괜히 경계하지 말라 한다. 물론 경계는 보안을 필요로 하며, 보안은 다른 사람과의 연합을 방해한다. 그런 게 걱정되어 그런 말투로 이야기했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한남들은 자신이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매초 매순간마다 할까? 매사에 조심하고 피해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의식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남자도 여자가 무섭다는 말은 그저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관계에서 차이가 너무 크다면 예외겠지만, 그게 유일한 케이스란 점이 문제다.

 

P.S 참고로 리뷰의 한남스러운 발언들은 모두 다 내가 자주 듣던 한 팟캐스트에서 추출했다. 자꾸 자신이 한 말의 출처를 밝히라 하시는데 나중에 나이 드시면 상당히 자신의 과거에 대해 부끄러우실 것 같아서 일단 '팟캐스트 방송'이란 것만 밝혀둔다. 누구씨처럼 본명이며 과거 일까지 다 들춰놓으면서 비웃고 싶진 않았다. 이 얘기 듣고 뒤따라 오는 놈들 태반이 덮칠 궁리하는데 안 그런 한둘 때문에 조심하지 말라니, 제 놈이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조심하는 걸 지X하는 놈은 아주 수상하다고 누군가 그랬습니다.

 

이인용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서 아베 야로의 만화를 킥킥거리며 읽다 보면 어느 결에 이응옹이 온다. 밀가루 반죽처럼 물렁한 뱃살을 털렁이며, 동의를 구하는 듯 소파 아래서 "냐아"하고 짧게 운다. 인간의 대답은 필요 없다. 그저 "그 자리를 내가 쓰겠다냥"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책읽는 와중에 잘 보이는 아베 야로 만화 ㅎㅎ 심야식당으로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국내에 번역된 재밌는 만화가 여럿 있다. 

 

가위에게 중에서

 

이쯤 걸으면 항상 트럼펫 소리가 들린다. 트럼펫 소리. 어떤 노래의 간주에만 나오는 트럼펫 소리를 좋아했지. 그걸 듣기 위해 노래를 종종 듣는다고 했었는데. 그러나 간주만 돌려 듣지는 않았지. 그러면 갑자기 끼어드는 트럼펫은. 어느새 흐르는 조용한 눈물은 흐르지 않았으니까. 이상하다 이 부분에서는 언제나 눈물이 흐르네.

노래를 벗어난 트럼펫 소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트럼펫 소리와 다르구나.

 


  

이 잡지에 올라왔던 그 어떤 시보다도 와닿는 듯하다.

 

컴파일 사의 게임 캐릭터 '모모모'를 좋아한다. 노랗고 둥근 몸통에 뾰족 난 원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쭉 찢어진 두 눈에 커다란 녹색 베낭을 멘 정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어째서 이런 것'을 사고파는 상인 캐릭터. 그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된 것은 중소기업의 마케팅 부서 신입사원이다. 문과 졸업생들의 종착역은 치킨집 창업 아니면 편집자/기획자라고, 남들 다 하듯이 흐르는 산업의 물결을 따라 달리다보니 우선은 계약직이 됐다. (...) 모모 님, 모모 님,이라고 불릴 때마다 얼굴이 붉어졌다. 수평적인 회사 분위기를 위한다며 직위가 아닌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는 회사가 많아졌다. (...) 아무래도 두 글자가 편하죠. 한국식 이름도 대부분 두 글자잖아요?

 


  

옛날에 페친 끊었던 인간이 페친에게 '학벌식 경쟁에서 패배한 것들이 꼭 넷상에서 징징거린다' 라는 말을 하면서 민폐 끼치더라. 근데 어느 정도는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저런 식으로 닉네임을 부른다면 그걸 이유로 난 이직하거나 퇴사할 듯 ㅋㅋㅋ 역시 난 천성 계약직이 적성에 맞나. 모모는 소설에 나오는 모모고 모모모는 게임 캐릭터다 이 자식들아 존중을 취향해주세요!라고 소설 주인공 대신 큰 소리로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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