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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하얀 평일 중에서

희고 얇은 영혼의 어딘가 연옥을 아는 듯 파인 데가 있어
사랑을 믿었다는 말을
누구와 나눈 적 없는 새 발자국으로 남겼을까
무결한 피의 하얀 파지가 감싼 가슴께

하얗게 얼어 있을 때
검은 눈 하나씩 가지 속에 숨어
사랑은 붉은 매화 환몽을 거미줄처럼 내림받았다

죽은 가슴에 시멘트를 부은 그녀와
나는 눈길 위에 서 있었다
(...)
포닥포닥 눈 속에서 움직이는 것들의
실연은 매번 첫번째 실연 같았다

 

 


나는 대체 왜 이 시를 집었을까. 거의 모든 매체에서 사랑이란 말도 연애란 단어도 가물가물한데, 제목처럼 시도 굉장히 순수해서 놀랍기만 하다. 심지어 지금 막 빌린 시집에서 그렇게 넘치는 여자나 술이란 단어도 별로 없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하루하루 일기를 쓰기만 한다는 어떤 팟캐스트 방송하는 분의 말이 생각난다. 만일 그 분이 이 책을 보시면 좋아하지 않을까. 사랑에 대해 상당히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 시에도 왜 이렇게 봉긋하다느니 가슴은 많이 등장하는 걸까.. 혹시 큰 게 취향이시라거나(마음이). 아무리 어머니를 상징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너무 강조하니 좀 꺼림찍했다. 애초 어머니 찬양하는 책이 내 취향도 아니니 개인적 감상이다.




 

사랑도 태어나고 죽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해보면 사랑할 때보다 사랑이 끝날 때 얻어가는 것이 더 많다.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서 살아 있을 때엔 알 수 없지 않은가? 파국을 맞을 때서야 진정 그 가치가 생겨난다.


결혼의 의미는 아직 몰라도 사랑의 의미는 알고 있다. 그리고 입가에 사랑의 표현을 달고다니던 연인들은 그 사랑과 추억을 마음 속에 간직한다. 개인적으론 얼굴도 목소리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건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옛 연인이 두고 간 다이아 반지는 어차피 싼 값에 되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다이아 반지를 분해해서 판다면 그것들은 더욱 싸구려가 된다. 그리고 사랑은 다이아 반지같은 게 아니라 인연에 대한 기억으로 남는다.

요즘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사실 이혼 자체는 걱정될 게 아니라 본다. 오히려 페미니스트 시점으론 환영한다. 사랑이 남아있지 않은데 상대방이 같이 살아갈 능력도 없다면 헤어지는 게 낫겠지. 문제는 인연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것이랄까. 위기에 같이 도우면서 대처해나갈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랄까. 그래서 사랑이든 이별이든 아픔을 전혀 겪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연애하면서 좋은 경험이 많았던지라 안타깝다. 그 재밌는 걸 포기한다니..




끝부분까지 읽다보면 일본의 시골 역 이름이 한자로 쓰여져 나온다.


도쿄와 쿄토만 나는 잘 모르지만, 일본 시골 역에 빠삭한 분들은 그 감성을 제대로 겪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스코틀랜드 냄새가 나는 아란이란 곳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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