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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Society

빵과 장미


빵과장미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캐서린 패터슨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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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에코페미니즘 토의를 할 때, 시위를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다. 본인은 그녀가 하는 말에 사사건건 비판하려는 심술굳은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다행히도 사회자를 맡으신 분이 온화하게 말을 잘 하시는 분이라 어떻게든 그녀에게서 그 이유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요지는 자신이 다니던 사립고등학교가 집단의식을 끔찍히 강조하는 곳이었던지라,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닌 그녀는 결국 '집단'과 '우리'라는 말에 알레르기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나는 금방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언제나 '우리'라는 말이 있으면 '남'이라는 말이 있게 마련이다. 적이 없으면 내분이 일어나지만, 적이 생기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살기 위해 똘똘 뭉치고 저항하는 게 인간이다. 너무 부정적으로 말했나? 이 책의 어떤 대사를 읽고나서 본인은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시련에 대처하는 민중의 태도는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점이 있나 보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은 그 자리에서 누울 뿐, 뿌리뽑히지 않는다. 로사처럼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고, 제이크처럼 짜릿한 흥분과 재미를 느끼기도 하면서. 때려눕히려 하는 바람이 없으면 풀은 그저 땅 위에 서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 그저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서있는 '행동'보다 더 지루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이 책은 기이한 마력을 일으킨다. 분명 심각한 사태를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천진난만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아이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소 딱딱한 객관적 서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제이크의 이야기는 더욱 극단적이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여의고 학교까지 다니지 못했지만, 결국엔 로사의 소원대로 행복해진다. 그렇다고 해피엔딩이 이 소설에 전반적으로 풍기는 핑크빛의 근본적 정체라는 뜻은 아니다. 이 소설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시위배경 또한 알 수 없는 낙천적 분위기에 한 몫한다. 말도 국적도 다른 노동자들이 넓다란 광장에서 한 데 모여 시위를 벌이고, 행진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글을 쓸 줄 아는 어린 여자아이 로사가 또박또박 쓴 글이 널리 화자된다. 인생엔 빵도 필요하지만 장미도 필요하다. 예수님도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가족간의 사랑, 지친 몸을 쉬게 해주는 깨끗한 집의 환경 등도 사람이 사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정신없이 일해서 밥 먹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습관처럼 출근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은 저어기 북한이나 남아시아에 널린 기아상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면 그들보다 못할 수도 있다.) 쌀 소비 촉진에 돈을 쏟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지예산은 국민들이 '장미'를 얻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멋대로 복지예산을 삭감하여 장애인들과 노약자들의 꿈을 앗아가는 행위는 파렴치하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복지예산을 지키기 위해 촛불시위 때보다 더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운 시위를 할 날이 오리라. 본인은 조용히 분노하면서, 그 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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