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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ery&Horror

메모리북


메모리북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하워드 엥겔 (밀리언하우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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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딴지같은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본인은 이 책을 추천해 준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진짜 소설일 줄 몰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쇼크먹을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과에서는 정말로 존재할 것 같은 환자들이 나왔었고, 그 환자들에 대한 의사로서의 애정이 책 속에서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환자들의 증상에서 상당히 과장된 면이 있기도 했다. 어쨌던 그런 실소설을 썼던 올리버 색스가 추천한 책이다. 역시 이 책도 정신과 관련된 실소설이다. 그러나 이 책이 환자로서 병원에서의 온갖 생활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올리버 색스의 소설과는 다르다. 이미 '책 못 읽는 남자'라는 에세이를 써서 유명세를 얻었지만 이 책에서는 추리라는 아주 적절한 양념을 끼얹었다. 내용 자체도 흥미있지만 무엇보다 흥미가 있는 점은 바로 작가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 그 자체다. 왜냐하면 그가 걸린 병의 이름은 바로 '실서증 없는 실독증'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쓰는 데엔 문제가 없지만 글을 읽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병이라 한다.

 

 만약 내가 실독증에 걸린다면? 일단 본인은 국어를 남들보다 좀 할 줄 알고, 외국인들 앞에서 더듬거리지만 영어나 일본어 등도 좀 할 줄 안다는 자신감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하루에 10권씩 책을 읽지는 않지만, 나름 집에서 밥먹을 때나 밖에 나갈 때는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배우는 중이었던, 혹은 당연스럽게 생각했던 언어들을 하루 아침에 읽지 못하게 된다면 얼마나 기가막힌 일일까! '더 리더'처럼 남이 글을 읽어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사실 남의 글을 읽는 게 문제가 아니다. 작가라면 자신의 글을 읽고 편집 혹은 수정해야 하는데, 직접 쓴 글도 한참동안 알아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편한 일일까? 책을 읽지 못한다는 그 공포는 본인도 지금까지 겪은 모든 불행과는 비교도 안 되리라 생각한다. 바로 본인이 삶에서 겪은 불행을 독서로서 풀었기 때문에.

 

 그의 글에서는 확실히 나레이션보다는 인물의 대화가 많았고, 그 때문에 소설이 질질 끌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상황에서 완전히 도피하진 않았으나, 무리해서라도 밝은 기분을 가지려 노력하는 모습이 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적절한 유머와 냉소가 섞여 있었다. 덕분에 소설의 몰입력은 한층 좋아졌지만 말이다. 게다가 심리소설로만 생각한 책이었으나 의외로 트릭이 잘 짜여진 소설이었다.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제한된 상황이 오히려 그를 안락의자 탐정같이 보이게 했다. 다른 탐정소설과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면 무의식으로 인해 범인을 잡는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다는 설정이다. 아무래도 자신이 그같은 병에 걸리다보니 정신학과 심리학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았으리라. 주인공의 의식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지 아니면 나 자신도 기억이 흐릿한 편이라서 그런지, 베니의 모호한 기억을 따라잡으려면 책 앞 면을 몇 번이나 들춰보아야 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괜찮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보기 위해 실소설을 볼 때가 있다. 전화위복은 여러가지 다른 속담들로서 하나의 법칙이 되었고, 본인도 굳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신체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무언가 부족해지거나 없어지면 보충하려 노력한다. 우리의 정신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실독증에 걸렸지만 추리력이 극도로 발전했듯이,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또다른 새로운 것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메모리북'은 추리소설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소설이라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여러 장애우들이 이 소설을 읽고 희망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장애는 또 다른 진화의 길이고, 불행은 또 다른 행복이니까. 이 소설이 바로 그 산 증거다.

 

 P.S 박현주 님은 아무래도 심리에 관련된 소설을 자주 번역하시는 것 같다. 비록 문체는 매우 딱딱한 번역투이지만, 언제나 심리학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부분은 매끄럽게 신경써서 다듬어주신다. 전문서적엔 전문지식을 지니고 있는 번역가를 써야한다는 본인의 견해와 걸맞는 책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팔지 않고 집에 보관해 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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