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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Nuturition

말괄량이 길들이기

 

 

페트루치오: 장식품이 빈약하고 옷차림이 허름해도 당신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소. 그것이 부끄럽거든 내 탓으로 돌려요. 그러니 기운을 내요.

캐더린: 그래요. 고마우신 신에 걸고 고마운 태양에요. ㅡ허나 당신이 아니라고 하시면 태양이 아니랍니다. 달은 당신의 마음처럼 늘 변하죠. 당신이 이름을 붙이면 뭐든 그대로 되요. 캐더린에게도 늘 그렇게 됩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셰익스피어 작품이다. 어쩌면 능글맞은 남자를 좋아하는 성미는 근본적으로 이 페트루치오에서 유래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원작으로 읽는 건 처음이지만 소설으로 풀어냈던 어린이용 개역판을 읽고서도 홀딱 반했었다. 이렇게 전예원에서 나온 원작 번역판을 읽으니 되려 예전에 읽었던 어린이용 책의 삽화와 글씨들이 떠오른다.

 어릴 적엔 대체 무슨 심정으로 이 책을 좋아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책을 제일 많이 읽었다고 생각되는 초등학교 1, 2학년 때 내가 몇 번씩이나 읽었던 게 이 작품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인데, 둘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둘 다 주인공인 몹시 심한 장난꾸러기라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다. 다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환경이 그를 철부지 어린애로 있게끔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씁쓸...) 반면에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의 캐서린은 개인에 의해 요조숙녀(?)로 거듭나게 되는 케이스이다. 더욱더 괴팍한 남자주인공의 등장으로 인해 전혀 말괄량이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 그래서 그런가 왠지 페트루치오가 열심히 그녀를 케이트라 불러가면서 온갖 괴팍한 짓을 다할 때 캐서린의 태도란 '이이익...! 나는 말괄량이란 말야! 너보다 더 괴팍해!' 라고 세력다툼을 하는 듯한 느낌.)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자연의 역경(일부러 북쪽지방에서 산다.)과 생명을 위협하는 시련(일부러 먹을 것도 안 주고 마실 것도 안 준다.) 속에서 마음이 통한다. 어찌보면 페트루치오도 지극정성이다. 똑같이 말을 타다가 똑같이 말에서 떨어져 구르고, 똑같이 굶고 똑같이 추워한다. 어쩌면 이 지극정성에 캐서린이 넘어간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캐서린의 동생은 그닥 남편에게 홀딱 빠진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도 않다. 정체를 속인 뒤 장인어른과 자신의 아버지까지도 속이고 교회로 끌고가서 결혼을 했는데, 솔직히 나 같으면 배신감 느낄 듯.

 결국 여자를 넘어가게 만드는 방법은 지극정성 하나뿐이다. 근데 이 연극을 보는 남자는 커녕 여자들도 이 연극이 페미니스트적이 아니라면서 반대운동을 하는 걸 보면 셰익스피어는 관객들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한 듯하다.

 

 

 

출처: 목탄M

2막 1장 부분 자세히 보시려면 http://mtothej.tistory.com/523

그럴듯하다... 특히 페트루치오가.

근데 사실 나도 '케이트'라는 이름 듣고 "먹고 싶은 이름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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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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