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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동경

내 몸 안의 반지층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뼈가 헐거운 새가 울다가 텅 빈 곳으로 날카롭게 날아갔다

욕조에 담긴 내 몸이 물을 더럽히고 있다 뼈는 내 몸 안에 부풀린 딱딱한 거품이다 나는 내 방의 여러 구석에 나뉘어 있고 방은 자꾸만 비좁다

나는 어디서든 머리를 기대고 쉽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면 빠져 있을 머리카락 몇올을 그대로 두고 왔다

욕조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욕조 밖으로 뻗은 발이 시리다 창밖으로 무덤이 보인다 내가 몸을 씻는 높이에 누군가 죽어 있다 이 높이에서 애인과 나는 옷을 벗는다 이 높이의 욕조를 향해 새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나를 지나갈 것이다

머리카락 몇올은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만 내 곁에 와서 나를 안쓰럽게 쓰다듬다 간 손짓인가

욕조로 쏟아지는 물을 보면 계단은 중간에서 차오른다

 

 


 


80년대 초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왠만하면 잘 살았던 시대였다.


게다가 사교육이 성대하게 유행하면서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다양한 학원을 보냈다. 그러나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학원이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에,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그닥 성숙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체벌이 자연스러웠던지라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고 온 애들이 학원에서도 맞는 상황이 발생했었다. 나도 피아노 학원을 다니다가 콩쿨에 보내려는 의도가 다분한 레슨에 음정박자가 틀리면 자 모서리로 손가락을 때려대는 선생의 태도에 기분이 나빠 그만뒀던 기억이 난다. 더 어렸을 땐 수영 학원을 다녔는데, 너무나 좋았지만 가끔씩은 엉덩이를 야구 배트로 맞는 단체 기합도 받았었다. 그러나 역시 체벌보다도 가장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했던 건 선생님들의 다양한 비아냥이었다. 자세가 삐딱해서 등골이 휘어지고 있다며 선생님들이 먼저 특정한 아이들을 지목했다. 아마도 자신이 학교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선지, 아이들에게 춤을 추라고 시킨 적도 있었다. 문제는 잘 추지 못할 경우인데, 그럴 땐 그 아이를 모든 학생들 앞에서 다시 춰 보도록 시킨 뒤 주도해서 비웃었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 앞에서 알아서 감정을 추스리며 살아야만 했었다. 물론 시인 자체가 남들의 평가에 민감한 것 같지만, 그 당시의 정서를 잘 담아낸 건 맞다.

 

 



전반은 연애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들어가 있지 않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사랑시라는 티도 나지 않는다. 항상 이것과 저것의 중간에서 머뭇거리다 튕겨져 나가버리는 시인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사실 그녀의 집 앞에서 창문을 들여다본다는 설정은 요즘 시대엔 호러로 찍히기 딱 좋지만(사실 약간 그걸 노린듯한 시 구절들도 몇 가지 있다.) 원래 사랑이란 감정 자체가 비정상적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뜸을 들이는 시인인지라 구절들에 꽤 여운을 남겨두는데, 그게 또 한 템포 더 느려져서 서정시의 느낌이 물씬 난다. 그리움에 관한 시라고 하기엔 또 다른 게, 야밤에 그림자만 골라가면서 손도 잡지 않고 조심조심 같이 걷는 연인에 대한 시라던가 어딘가 다른 사연이 있는 듯한 것들이 많다. 아무래도 시인은 다양하게 접근하려던 듯하다. 그러나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는 게 중요하다. 아무튼 대중들이 좋아하는 노골적인 사랑시와 사랑이란 게 어디 있는지 도통 모를 난해한 미래파 시 사이에 있는, 조금 특이한 시라고 볼 수 있겠다.

 

 

 


'너'의 집이 아파트 2층 이상이거나 혹은 방이 2층에 있는 집을 연상시키는 반면, 시는 지상도 부정하고 지하도 부정하는 점에서 왠지 반지하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평론에서처럼 중간이라고 보기엔 굉장히 추상적인 문제인 듯. 반지하에서는 습기가 금방 찬다. 창을 내다보면 발만 들여다보인다. 가끔 술 취한 발이 창문을 걷어차서 깨뜨릴 때도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곳에서 자신의 언어가 살기를 고집한다. 시인의 우직함이 범상치 않다. 그런 상태에서 사랑시 말고 새로운 시에 도전하겠다는 그에게 결실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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