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우표에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인데, 우리나라엔 아는 사람이 없는가보다.
작가 이름을 검색해봐도 어떤 책도 뜨지 않아서 아무 관련도 없는 책을 표지로 올려본다... 흑흑.
이게 다 인터파크가 책을 올려주지 않는 탓임.
데렉 월코트는 영국계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고 한다. 책에 나온 사진을 보니 우표에서 그려진 것보다도 잘생겼다. 미중년이라고 일컬어도 좋을 듯?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많았는지, 시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여자의 몸에 대한 세세한 묘사들이 보통이 아니다. 이것이 남부의 시인가, 생각될 정도로. 그렇지만 그의 시를 선정적이라고 간단히 꼬집어 말할 수도 없다. 그의 시세계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나로서는 감이 잡히질 않는다. 어떨 땐 놀랄만큼 바다가 섬세하게 묘사된 서정시가 등장하질 않나, 갑자기 사랑에 관한 애절한 시가 등장한다. 그리고 주로 등장하는 것은 사회비판과 관련된 시이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간간히, 한탄하듯이 묘사하고는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메로스>라고 번역된 (호메로스겠지...)시를 썼다고 하는데 또 검색이 안된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도 이 책과 <행복한 나그네> 외엔 기록이 없었는데? 이건 그냥 찾기를 포기하란 소리인가 ㅠㅠ 새삼 우리나라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할지 짐작이 간다.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들의 책도 제대로 대우해주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떡고물이 떨어지길 바라는가. 그냥 한숨만 나올 뿐이죠.
무튼 그의 시가 그렇게 감명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외국의 토속적인 색깔이 상당히 짙어서 잠시 지중해를 여행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은 난다. 이 시 속에서 배를 타고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중앙아메리카로 가시는 분들은 이 책을 챙겨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시각뿐만이 아니라 오감으로 바다를 설명하는 능력 하나만큼은 뛰어난 것 같으니. <바다는 역사다>라는 훌륭한 시를 하나 건져서 매우 뿌듯하다. 무리해서라도 전문을 올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순교자들이여, 그대들의 기념비는 어디 있는가, 그대들의 싸움은?
그대들의 종족이 지닌 기억은 어디 있는가?
회색의 지하 납골당에 계신 여러분. 바다, 바다가
그들을 가두었나니. 바다는 역사다.
처음엔 기름이 떠올랐다.
혼돈처럼 무거운,
그리고서 터널 끝의 빛처럼
범선의 등불,
그게 창세기였다.
그러자 통조림된 울음이 있었다.
그 똥과 그 신음이, 즉
출애급.
뼈와 뼈가 산호로 땜질되고
상어 그림자의 축복으로 덮인
모자이크.
그것이 십계명을 담은 상자였다.
그리고 나서 해저에 비친 햇빛의
잡아 당기는 철사줄에서
바빌론 노예 시절의 애처로운 하프가 연주됐다.
마치 익사한 여인들 시체 위에 놓인 쇠고랑처럼
하얀 보배조개같이.
그리고 저것들은 솔로몬의 아가인
상아 팔찌였다.
그러나 대해는 역사를 찾느라
계속 빈 책장만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서 닻처럼 무거운 눈을 지닌
사나이들이 오더니 무덤 없이 가라앉았다.
소를 통째로 구어 먹고서
야자나무 잎처럼 검게 탄 갈비뼈를 바닥에 남긴 산적들,
그리고 나서 거품이 일고, 높은 바다의 성난
아가리가 포트 로이얼을 집어삼켰으니,
그게 요나였다.
그러나 그대들의 부활은 어디 있는가.
나리, 그건 바다의 모래 속에 갇혀 있습니다.
저 앞 해벽의 요동치는 선반 넘어,
전함이 침몰해 버린 곳에.
이 물안경아, 난 널 그곳으로 안내하련다.
저 밑 오묘한 바다 밑으로
줄줄이 돋은 산호의 숲을 지나서
부채꼴 산호의 괴기스런 창들을 지나
비늘이 딱딱한 물고기가 줄마노의 눈빛을 하고
눈을 껌벅이며 대머리 여왕처럼 그의 보석의 무게에 눌려 있는 데로.
따개비들이 돌처럼 곰보가 된
이들 궁륭의 동굴들은
우리들의 성당이다.
그리고 태풍 앞의 용광로,
고모라, 풍차에 돌 가루, 옥수수 가루로
갈아진 뼈들,
그리고 그게 애가였다.
그게 다름아닌 애가였다.
그건 역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 강의 메마른 입술 위의 거품처럼,
뭇 마을의 갈색 갈대가 나와서
도시를 덮고 또 쑥대밭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저녁엔 난쟁이들의 합창,
그리고 그들 위에는 첨탑들이
하나님의 옆구리에 창질을 하고
그분의 아들이 자리를 잡자, 그게 신약성서였다.
그리고 나서 백인 자매들의 파도의
전진에 맞추어 손뼉을 치며 왔다.
그리고 그게 노예 해방이었다. ㅡ
환희의 축제, 오, 환희의 축제 ㅡ
이는 재빨리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해초가 햇볕에 마르듯.
그러나 그건 역사가 아니었다.
그건 다만 신앙이었다.
그리고 나서 바위마다 깨어져 각자의 나라가 됐다.
그리고 나서 파리떼의 회의가 나왔고,
그리고 나서 비서인 해오라기가,
그리고 나서 황소개구리고 투표를 하라고 울부짖었다.
기발한 생각을 가진 개똥벌레들이
그리고 제트기로 날아다니는 외교관 같은 박쥐들이
그리고 카키옷 입은 경찰관 같은 사마귀가,
그리고 재판관 같은 털이 난 쐐기벌레들이,
사건 하나하나를 면밀히 검토하고,
그리고 나서 양치류의 어두운 귓속에,
그리고 바닷물이 고인 바위의
간간한 키득임 속에 소리가 있었다.
역사의 메아리 없는 허튼 소리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