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고에서 운영하는 자습실도 '성적순'입니다. 학년별로 180개의 좌석이 있는데 1~150등까지는 성적순으로 앉습니다. 나머지 30석은 추첨으로 정합니다. (...) 심지어 좌석도 성적순입니다. 1등 좌석이 크고 널찍한 타워펠리스라면 석차가 낮아질수록 자리 간격이 좁아져 150등 부근은 좌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달동네입니다. (...) 공부 좀 못했다고 배척당하고, 소외되고, 차별받고, 투명인간 취급받는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위축될지, 아예 미래를 포기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p. 8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지금 보고 있는 킬라킬이란 애니메이션에 대해 소개하겠다.
참고로 대상 학교는 안산 강서고가 아니라 서울 목동 강서고이다. 헷갈리는 일 없으시길.
킬라킬의 주 무대는 한 사립 고등학교이다. 여기선 공부를 못하면 말 그대로 옷 입은 돼지 취급을 받는다. 지역이 피라미드처럼 생겼는데 공부를 못하면 못할수록 맨 밑 층에 있는 슬럼가에 가깝게 살아야 한다. 뭣도 없는 놈들은 아예 슬럼가에서 날건달이 되어 등교거부를 선언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도 아예 받아주지 않고... 이사장의 딸이 제복을 만들어 나눠주는데, 제복에 달린 별의 수만큼 파워와 내구력이 결정된다. 물론 입는 사람도 신경계라던가 정신 역량이 특출나지 않으면 컨트롤이 불가능하다. 아무튼 이 제복을 입을 만큼의 능력이 되지 못하면 왕따는 물론이요 하류층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애니메이션을 만든 제작팀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불가능한 세계관을 만들려고 상황을 극단적으로 설정한 것 같은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공부를 안 해서 자습실을 스스로 박차고 나온 것도 아니다. 150등에서 밀려났다는 이유로 자습실을 갈 수 있는 권리를 뺏기고, 결론적으로 공부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허... 글을 쓰면서도 믿겨지지 않는다. 신문까진 아니지만 시사잡지에 나왔으니 확실한 사실이긴 할 텐데.
문법도 잘 안 맞는데다가 찾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박근혜 대통령이라던가 KBS 이사장이라던가 이런 인물들이 이 글을 본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덤빌 것이다. 150등 안에 들지 못하니까 자습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러니까 대학도 형편없는 데에 가고, 결과적으로 보면 다 자기 책임으로 인해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그 전에 진실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자습실은 학생들 모두가 쓰라고 만든 거 아닌가? 물론 높으신 분들은 전용 주치의를 데리고 있으시겠지만, 만약 그 분들이 사정이 있어서 대중들이 쓰는 치과를 간다고 하자. 만약 그 치과가 예약제라고 해서 치과 안에 있는 소파에 앉지도 못하게 하고 밖으로 쫓아낸다면 그 분들은 펄펄 뛸 것이다. 치과는 치아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냐고. 치과 안에 있는 소파는 고객들이 편하게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서 만든 게 아니냐고,
근데 이 경우는 그런 것도 아니다. 전화예약은 선착순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치과가 팁을 더 많이 주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더 많이 주는 거다. (요즘엔 사교육을 받아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고 대학 정보도 아예 거기서 모은다고 하니 거기다 퍼붓는 돈을 좀 비싼 '팁'으로 봐도 되겠지?) 원하는 시간대에 예약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미백같은 서비스도 더 많이 제공해준다. 그렇게 되면 팁을 주는 게 내키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자신의 치아에 대한 데이터와 그걸 잘 습지한 의사가 그 치과에 있는데, 다른 병원을 가는 건 그 환자에게 상당히 손해를 끼친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만약 그 치과가 영리적으로, 다시 말해 돈을 위해 운영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한다. 눈도 감고 귀도 막아버리는 데서 끝내지 않고, 쫓겨난 고객들에게 오히려 협박을 한다. 지금이 그런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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