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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편의점 인간

"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성행위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봅니다. '창녀와 관계한 건 포함시키지 말고요' 하는 말까지 웃으면서 태연히 하죠, 그놈들은. 나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참고로 주인공은 이 분처럼 모에하지 않습니다. 손가락과 팔에 털이 많은 타입이라고 하죠. 잠깐 동거했던 남자도 이 여자와 같이 살면서도 몸을 건드리는 것조차 싫어하고요. 이 소설의 그런 점도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내 현재의 모습과 주인공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걸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정말 편의점에서 근무한다는 근본적인 점만 빼고는, 이 점원은 나와 많이 닮았다. 성적인 욕망이 극도로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아기를 보면 귀엽다고는 생각하지만 정작 내가 아이를 낳아서 기를 생각은 없다. 한번 사회에 도태된 적이 있는 내가 내 유전자를 뿌려서 내가 이전에 겪은 일과 똑같은 짓을 당하게 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과의 차이점이라면, 나는 일단 '남'과 내 집을 같이 쓰는 데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서 애초에 결혼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동거 따위는 죽었음 죽었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오래 전부터 다짐했었다. 또한 내가 자식을 낳지 않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내 탓이라기보다는 남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심하게 굴고 도태시키는 사회 때문이라 생각하는 점이다. 옛날엔 자급자족이라도 할 수 있었지, 지금은 몸을 망가뜨리고 부서지게 해서 서서히 죽이고 있지 않은가. 이 작가는 자신을 '크레이지' 사야카라고 부르고 있다는데, 4기 죠죠의 스탠드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를 베낀 느낌과 더불어 작위성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도 '세상에서 도저히 써먹을 데가 없는 소설', 특히 범죄소설을 매우 좋아한다는 데서 어딘가 정상적이지 못한 주인공과 비슷한 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범죄소설에 깊이 빠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티비에서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보고 너무나 감명을 받아 빨강머리 앤을 따라하려 했던 게 시작이었다. 물론 그 시도는 교무실에 불려갈 정도의 문제가 되어 처참하게 실패했고 '앤은 어딘가 이상하다' 따위의 구절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20대 중반이 되고 나서부터다. 그러고보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소설 속 인물 제제도 도가 넘도록 심한 장난꾸러기라서 어른들에게 '혼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직장에 취직하기까지 수많은 직장에서 쫓겨나는 생활을 했는데, 그 중 한명에게는 쓸데없는 소설 좀 그만 읽고 세상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쓴 자서전이라거나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 병원에는 현재 근무하지 않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간호사 중 한 명이 열심히 자기계발서를 읽고 암기한 뒤 그녀에게 열심히 그 구절들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울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당신과 세상 사람들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인식받기 위해, 안도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것일까." 그러나 현재 그들은 만나지 않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편의점에 직원이 없으면 편의점이 운영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구박을 받는 이들은 야간파트가 아닐까 한다. 야간 편의점은 술에 절은 인간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보통 뭔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야간 알바를 뛴다. 그래서 같은 점원이라도 주간보다 더욱 차별을 받는다. 그리고 이 소설의 폭은 사실상 편의점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보면서 편의점 알바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알바의 이점은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일단 사무직보다는 더 편하게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육체노동자가 아닌 사람들도 육체가 아프면 끝장이 나 버린다. 편의점에서 암컷 취급을 당하는 후루카와가 고로케를 튀기다가 손에 입은 화상보다도 그걸 더 견디지 못하는 데서 그 암시는 뚜렷해진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곧장 육체적인 문제로 직결된다. 내 또래도 공무원이 되었었지만, 현재 스트레스로 인해 피부와 근육이 썩는 질병에 걸려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다. 그런 병이 항상 그렇듯, 나을 가망이 없어보인다 한다.

 사람들이 대학을 다녀야 하는 이유는, 그 곳은 회사와 기업을 떠나 중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잠시나마 지닐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이 세운 대학은 예외다.) 나는 대학교가 딱 그 정도의 가치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교의 그런 가치가 점점 사라져가고, 취업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지고 있는 지금은 수많은 '편의점 인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바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려면 어떤 대기업을 먼저 무너뜨리고 어떤 형태로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편의점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대통령감은 누구이며, 어떤 정책을 통과시켜서 편의점 인간들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 위선적인 인간들이 더 이상 우리를 깔보지 않기 위해선 어떤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가. 그렇다. 편의점 인간들이 이상한 게 아니다. 우리들이 대다수인 건 확실하니 뭉치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우리들이 '이쪽'이고 이상한 건 '저쪽'이다. 권력을 잡을 궁리를 해야 한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들이 "서점 직원으로 일하지 말고 덕질하는 돈을 줄여서 저축을 해 서점을 세워보지 그러세요?"라고 질문할 때 "그럼 니가 세워보세요." 이상의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후루카와나 사야카는 삽으로 머리를 때린다는 답을 내렸지만 그 전에 그 인간들이 그런 말을 할 엄두도 못 내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못 하도록 최소한 속으로만 이야기하고 닥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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