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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다산의 처녀

지팡이 중에서

멕시코 중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지팡이와 함께 앉은 노인을 보았다
지팡이는 무기가 아닌가
까다로운 공항 수속을 통과한 지팡이를 보며
그의 뒷자리에 앉았다

중남미 도서전이 열리는 과달라하라 공항에 내리니
마중 나온 여교수가 흥분해서
가르시아 마르케스 씨도 이 비행기로 오셨어요
그녀가 가리킨 곳에
지팡이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
많은 고독한 막대기들을 보았지만
보았을 것이지만
바로 옆자리에서 뒷자리에서
그와 어깨를 부딪혔지만
마르케스는 보지 못하고 지팡이만 보았을 것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좋다고 볼만한 시가 없어서 이 시를 올린 것이다. 다시 말해 나에겐 이 시가 좋은 건 아니다. 간지럼 정도는 기발하다 보지만 애를 낳아본 적도 없고 M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아이 다 키우고 50대 된 어머니들에겐 공감할 만한 요소가 많겠다.


아무튼 지팡이를 가져갈거면 그냥 개인 전용 비행기를 타던가 흠. 소설도 꼰대스러웠지만 이 정도면 혼모노네. 그나저나 저분 저거 땅콩갑질부린 거 아님?
검색해보니 노약자와 장애인의 보행용 지팡이는 허가된다고 한다. 문정희 시인이 그냥 비행기가 지체되는 게 짜증나서 썼을 수도 있고, 그 상황과 맥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긴 하겠다. 시가 대표하는 게 뭔진 알겠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사람의 이름을 담아 시를 쓴 게 살짝 불편하다. 오랜만에 보니 전반적으로 맘에 안 드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네.

 

 

 

단순히 살이 찌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할 때 좀 더 둔부가 커지고 땀 흘리는 일을 할 때 작아지는 건 있다. 요즘 공부라던가 글쓰기기법이 중요하네 어쩌네 하지만 중요한 건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다. 뭐라도 해야 결과물이 나온다. 그나저나 의자의 갈비뼈에서 시가 태어난다는 발상은 특이하네. 생각해보면 아무리 시인들이 뮤즈를 찬양했다고는 하지만, 현실을 보자면 그 뮤즈랑 놀았던 걸 의자에 앉아서 쓰게 되었고 결국 의자는 홀대되었던 게 아닌지. 

 

영감은 결국 노력에서 나온다는 걸 이 시집은 겸손하게 일깨우고 있다. 이제는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워낙 어렵다보니 다들 열심히 살아야 해서. 왜 우리나라 청년들이 노오력하라는 말을 싫어하냐면, 일로 먹고사는 걸 전제하기 때문이다. 옛날엔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게 일이기 때문에, 굉장히 그것을 숭고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이기주의라는 게 알려졌고, 청년들은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그들은 너무나 불안에 떤다. 걱정하는 자나 걱정하지 않는 자나 전부 노인이 된 자신에 대한 모습에 시선을 둔다. 현재 노인들은 청년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라 한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 일을 하기엔 동기가 굉장히 낮아진다. 내가 이렇게 노후나 대비하기 위해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다 불안에 싸여 투자하다 돈 날리고, 연금이나 보험에 돈 싸들고 가지만 결국 돌고 돌아 그것은 전부 그쪽 직원들 입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함부로 노력해봐라, 열심히 일해라하는 말을 입에 올리면 안 되는 것이다. 자기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사람들도 노후의 공포를 잊으려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테니.

내 또래 여성들? 난 30대 되면 죽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구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았는데 그래도 좀처럼 죽질 않는다. 여성은 크리스마스 케잌이고 팔리지 않으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져 썩는 것이다. 아마 노인이 되면 연금도 떨어지고, 남성 노인들보다 훨씬 못하게 살겠지. 그런 사람들이 운동권을 하면 그때 참여해나갈 생각이다. 아무튼 이젠 이렇게 훌륭한 시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문정희의 다산의 처녀는 여성이 홀로 아이를 낳고 울고 있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고독 끝에 태어난 아이는 핏빛처럼 붉고, 여성은 기쁨과 슬픔에 싸여 감정에 복받쳐 타오르듯이 운다. 그 여성은 강해서 그 순간은 곧 지나가고 그녀는 울음을 그친 뒤 길을 잃은 채 길을 찾아갈 것이다. 다소 앞뒤 분별이 없는 그녀의 짧은 시들은 너무나 매력있다. 마치 마리아가 하늘의 질문에 "응"하고 대답하지 않았다면 역사를 깨뜨려 처음으로 만드는 그 모든 순간이 시작되지 않았듯이.

 

흰나비 중에서

줄타기에서 모처럼 땅으로 내려온 소녀를
북한강가 누구네 집 여름 별장에서 만났다
엘비라 마디간! 그녀는 흰나비처럼
포도주 잔 주위로 날아다녔다

속도가 전공인 카레이서가
그녀의 날개를 잡았다
엑셀을 힘껏 밟고 달려가 신호도 무시한 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쥐더니
얇은 치마를 건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엘비라 마디간은 영화이름이기도 하다. 후반부에 있는 시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은 뒤로 갈수록 점점 재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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