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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소년이여, 요리하라!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음에도 상상보다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의 삶이 근거없이 저절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내지는 '높은 확률로 빈곤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어른'에게, 그렇게 구체적으로 들은 순간 느꼈던 '삶의 팍팍함' 때문이었습니다. '어른이, 선생님이, 이렇게 우리를 협박할 정도로 삶은 잔인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던 그 순간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일단 이 책은 김보통 씨의 에세이 대신 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시시한 책이었다면 고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적은 책이라거나 혼자 먹는 음식을 다룬 책은 최근 혼밥의 유행으로 인해 매우 핫해진 참이다. 그저 그런 메뉴를 택했다면 용서치 않겠다!라는 속셈으로 들춰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계란밥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요리칼만 들면 손을 썰리고 심지어 감자를 갈다가도 손을 갈아버리는 나에게 가장 편한 요리는 계란밥이었다. 이 분하고는 조리법이 약간 다르지만 그래도 급격히 친숙함이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한동안 살충제 논란으로 인해 계란밥을 먹지 못했는데 저자 분은 어떠셨을까? 확실히 뉴스에서 오랫동안 화제가 되고 달걀을 값이 싸거나 안전한 곳에서 바리바리 싸오는 장면을 흔하게 보아왔었던 걸 보면 달걀은 만인이 즐겨먹는 식품인 듯하다. 베지테리언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계란밥을 먹고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의외로 내용도 상당히 심오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볼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가 계란밥을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1.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적당히 두른 뒤 계란을 넣고 적당히 위쪽까지 익을 때까지 그냥 그대로 둔다.
2. 반숙이 되면 미리 퍼다놓은 밥 위에다 그냥 올려놓는다.
3. 밥 위에다가 간장 한 스푼과 조금 넘치는 참(들)기름 한 스푼을 넣고 계란을 으깨며 섞는다.
그러나 찬밥을 대상으로 한다면 확실히 저자가 한 것처럼 아예 프라이팬에 다 올려놓고 섞는 게 괜찮을 듯하다.

 

 

 

 

그나저나 왠지 이 레시피 보고 카우보이 비밥이 생각나서 찾아보니 프레리 오이스터가 떠오른 거였냐 나는... 어릴 때라 숙취가 뭔지도 모르고 따라해봤다가 그대로 토할 뻔했지;

 

혹시 김남훈의 수육에서 헷갈리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양파는 잘게 손질하는 게 아니라 1/2~1/4정도로 굵직하게 썰어야 하며 고기는 양배추 등을 집어넣은 다음 올리는 게 맞다.

키즈 리턴이란 영화가 딱 '70%쯤 망한' 희망만을 보여준다는데, 이 대목에서도 상당히 놀랐다.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그러나 70%라는 그 비율은 인생에서 내가 넘기려고 하는 그 비율이다. 보통 과음이라거나 도박병이라거나 가정폭력이 유전될 가능성은 70%라고 한다. 30%는 그 유혹을 무사히 넘기고 인생을 그럭저럭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자신에게도 그 영향이 닥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70점만 맞으면 돼'라는 위로(?)를 건네곤 했다. 어쩌면 70%쯤 망했다는 말은 인생에 있어 겪어야 할 시련들을 딱 70점만큼 겪었다는 말이 아닐까.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첫 데이트를 하면 상대의 취향을 볼 수 있다.
나도 파스타에 대한 기억이 있다. 어떤 분과 사귈 때 첫 데이트를 했었는데, 파스타를 다 먹자 갑자기 집에서 어머니가 싸줬다는 쉰 김밥을 꺼내더니 까르보나라 국물에 싹싹 발라서 먹더라.
뭐... 그게 취향이신 분도 있겠죠. 그런 겁니다.

솔직히 레시피의 실용성 면에서는 까르보나라에 대해서 쓴 손아람보단 알리오 올리오를 쓴 금정연이 나은 듯하다. 물론 손아람 씨가 사랑에 대한 글을 쓰셔서 굉장히 인상에 남기는 하지만. 예전에 어떤 예약제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주고 코스요리를 시켰을 때 거의 생마늘을 너무 많이 넣은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치가 떨린 적이 있다. 이렇게 레시피가 간단하다면 차라리 내가 요리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이 책 중에서 가장 공감하는 코너는 윤이상의 요거트다. 요리해서 먹으면 솔직히 비만만 될 뿐이고, 해봤자 살이 빠지지는 않는 노동만 늘 뿐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채소만 잘 씻어서 먹고, 그게 없으면 아침에 과일 먹어도 점심에 치즈랑 요구르트 먹고 저녁에 막걸리 마셔도 하루를 잘 산다. 미래에 나랑 같이 살게 될 인간이 있다면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앞으로도 난 아마 그렇게 살 것이며 요리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밥이 생각나면 가끔씩 계란밥 해먹는 정도? 뭐 이런 삶도 (해삼 멍게 말미잘 굴 빼고) 아무거나 잘 먹기 때문에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배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게 영양뿐만 아니라 '미식'까지 걸치면 다른 결이 되어버린다. 황교익 은 고랭지 배추가 정말 정말 맛없는 배추 중 하나라고 했으며 제철 배추랑 고랭지 배추를 비교 시식하게 했다고 한다. 결과는 실제로 종이장처럼 無맛. 저 본문에다가 '제철' 식자재라고 한정하면 100퍼 동감할 것 같다. 싸고 영양분도 풍부하며 맛도 좋은데 우리 식탁에서 제철 음식은 점점 더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모두가 '요리왕'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가 화가, 기술자, 회사원, 운동선수가 될 필요가 없는 것처럼요. 그러나 생존과 자립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능력을 갖출 필요는 있습니다.

 

 

 

 

제목에서도 짐작했지만 역시 이거 덕후들의 반응을 노린건가.. 

 

 

내가 먹고 싶은 재료를 골라 내 힘으로 만든 요리가 맛있기까지 하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요? 게다가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먹고 '한 그릇 더!'를 외쳐 준다면 그건 더욱 금상첨화겠지요.

 

 

 

 

세이밥 생각나서 써봄.
스미마셍...

 

북두신권, 매드맥스 뭐 이런 만화나 영화를 보면 인류 문명이 멸망해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악당들이 판을 칠 때 용사들이 짠 하고 나타나서 무찌르잖아. 어쨌거나 저쨌거나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면 악당이든 영웅이든, 뭐든 하겠구나.'라며, 담배 피다 선생님에게 걸려서 야구 배트로 맞으면서 이런 상상을 했던 거지.

 

 

 

 

근데 아무리 소년들을 위해 어른들이 가감없이 말한 것이라지만 음식에 소주를 넣으라 하지 않나 참 거침이 없다. 독자들은 미성년자로 설정한 거 아니었나;
마지막 말이 ㅋㅋㅋ

 

음식이 소재이고 주제인 영화는 꽤 있다. 음식남녀(중국 요리를 최고로 멋지게 묘사한다.), 바베트의 만찬(프랑스 요리의 맛과 멋이 담겼다.)은 이 분야의 고전이다. 최근에도 아메리칸 셰프 등 훌륭한 음식 영화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진정한 라면 덕후라면 이 중에 담뽀뽀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본이 영국만큼이나 영화를 정말 못 만든다는 사실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라멘 레시피가 나온다고는 하지만. 도전하시는 용자분께 박수를 보낸다.

 

이 에피소드의 가부장제는 아빠인 호머 심슨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동안 그의 아내인 마지 혼자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여성이 부엌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시즌2가 방영되었던 1991년만 해도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었지요. 아빠는 앞마당에서 바비큐를 구울 때나 요리를 했습니다. (호머는 시즌2의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바비큐를 굽다가 외계인의 UFO에 타게 됩니다.)

 

 

 

약간 변명을 하자면, 심슨은 어차피 미국의 일상을 풍자하기 위해 만든 애니메이션이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는 건 절대 아니니까 그런 거란 생각이 든다. 그걸 비판의 시각으로 본다면 시청자들에게 또 색다른 교훈을 줄 수도 있고. 근데 이 해석 참 새롭네. 호머가 바비큐 굽는 장면을 많이 봤어도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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