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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Essay

바흐친과 문학 이론

다만, 좀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바흐친의 '다중 언어성'에는 '모든 고정되고 지배적인 형이상학적 기표들을 탈중심화하는' 급진적이고 해체적인 운동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이른바 탈구조주의의 이론적 모티프를 선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 테리 이글턴, 축제로서의 언어(여홍상 편역 바흐친의 문학이론)는 이런 측면에서 흥미로운 통찰을 보여주지만, 이글턴은 바흐친 이론의 전복적인 활력을 마르크스주의적인 '민중주의'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일관되게 보여준다.- <이토록 사소한 정치성> p. 244

 

 

 

사진은 이 책의 저자들 중 하나인 테리 이글턴. 

 

 

바흐친이 무려 실제 존재하던 친구들의 가면을 쓴 이유는 이건가.
바흐친: 종교에 대해 특이한 관점을 가진 걸 숨긴 채로 책 출간 가능함(볼로쉬노프), 공산당 타이틀을 얻음으로서 안정적인 독자 확보(메드베제프)
&
볼로쉬노프: 바흐친의 필력으로 그나마 무명이던 이름이 세워질 수 있음.
메드베제프: 바흐친에 대해선 뭘 하는지 몰라도 걍 뭔가 잘난 척을 할 수 있음.

가만 있어봐 이거 진짜 천잰데?

바흐친은 사회의 다른 계층으로부터 다른 목소리들을 표현한다는 것은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을 하나의 장르로서 취급할 수 있는 어떤  확실히 여성이 쓴 소설과 남성이 쓴 소설은 구분이 확 가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쓴 소설에서 나오는 남자는 굉장히 매력적이라던가, 남성이 쓴 소설에서 나오는 여자는 어딘가 사람 같지가 않다던가.

여성주의와 대화론이라는 논문이 여기 나오는 바흐친에 관한 그 어떤 논문과 견주어 보더라도 가장 빨리 읽히는 페이지 터너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왜냐면 이 논문은 어떻게 워마드가 실패하여 넷상 고대 유물로 사라져 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워마드의 미러링은 남성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데엔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여자의 언어'에 너무 신경을 쓰거나, 혹은 남성들을 따라하는 데 너무 집착한 나머지 아무 언어도 쓰질 못했다. 결국 자신들의 언어를 창조해보기도 전에 매우 남성적이라 할 수 있는 평론가들에게 윤리적으로 공격받을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된 것 같지만 이전에는 여성이 썰을 푸는 걸 '소설 쓴다'고 했었다. 오히려 지금은 남성들에게 소설적인 것마저 빼앗기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흐친 거의 두세달 넘게 읽고 있는 듯한데, 소감은
"아, 철학책은 읽다가 도중에 쉬면 진짜 진도 안 나가지는구나." 였다.
지금은 완전 바흐친의 책에서 인용할 구절들을 찾아가면서, 텍스트를 따라간다... 정도로 집중력이 많이 딸리고 있다.
그나마 반 이상 읽었고, 3분의 2쯤 지나서 이렇게 된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철학책이 다 이런진 모르겠는데 처음 3분의 1도 사실 많이 버겁긴 했다;;; 왜 스탈린 등을 마르크스주의라고 하는지 좀 이해가 안 갔달까;; 그나마 제일 많이 건졌다 싶은게 중간의 글들이고.

300페이지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해가는 실망감. 소설이 뭐가 어쨌다고 그렇게 공격하시나. 그럼 철학서 저자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쓴 거 그대로 이루고 계신가? 충격적인 건 괴테조차도 소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썼다는 점이다. 아니 저기요 님이 쓴 것도 소설이거든요 ㅋㅋㅋ? 루카치는 문제적 주인공이 세상과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면 괜찮다고 말했다는데 솔직히 좀 꼰대같다. 새삼 바흐친이 위대하게 보여지긴 하다. 저렇게 소설에 대해 아무 말하는 시대에 소설과 대화를 옹호했다니 거의 선지자같은 역할을 한 듯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없다던 사사키 아타루와는 달리 이 책, 특히 바흐친과 현대 소설의 담론이라는 챕터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상당히 명백하게 밝히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런데 주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가 아니라, 실험적인 요소와 시장지향적인 요소가 소설에는 어느 정도 섞여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대로라면 아마 이 논문은 당연히 포스트모더니즘은 있으며, 미래엔 리얼리즘과 같이 모두가 섞일 가능성이 있다고 귀결이 나리라. 그리고 그 이론을 뒷받침하는 건 바흐친의 축제이다. 모더니즘이 죽은 건 아닌 채로 포스트모더니즘은 확실히 존재하는 듯하다.

 

시간 속의 모험은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한 초보적 방법으로 간주되지만, 싸구려 소설이나 연재 만화, 혹은 람보나 잃어버린 방주의 특공대 같은 영화들, 그리고 수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계속해서 등장한다. 왜 이러한 고대 시공성이 여전히 그토록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하는 것은 사회학적으로나 정신분석학적으로 크게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그러한 시공성은 행위와 사건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기에는 그다시 생산적이지 않은 듯하다. 어떤 문화이건 이런 종류의 잔재를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새로운 의견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시간여행은 너무 진부한 주제긴 하죠.

 

근데 리제로나 슈타인즈 게이트 열광을 보면 또 그렇지 않은 거 같고. 솔직히 후자는 왜 떴는지 이해가 가는데 전자는 이해가 안 갑니다. 막장드라마라서 그러나?

 

 

 

P.S 바흐친과 문학 이론에서 바흐친의 글 인용한 부분만 모음.-> http://vasura135.blog.me/221033277789

솔직히 이 중에 마음에 드는 한 글귀만 인상깊은 구절에 올리려 했으나 어느 하나를 정확히 고를 수 없더군요.

마지막에 바흐친이 연극에 대한 언급을 한 부분? 은 뺐습니다.

역시 바흐친 씨는 소설만 언급하셔야 바흐친 씨 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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