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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마음속 도저한 수압에서 당신은 살아간다, 내 기억이여, 표면으로 올라오지 마라 중에서

기억에게 물어보자, 기억아, 기억아,
너는 난생이니, 태생이니?
너는 식물성이니, 동물성이니, 그도 아니라면 미네랄이니?

기억아, 기억아,
너는 암컷이니, 아니면 암수동체니?
너는 아프니, 건강하니, 아니면 변화된 사실이니?

주름상어가 올라오는 해안
올라오자마자 수면에서 사라지는 고생대의 기억을 바라보는 포유류가 있었지.
수압에만 견뎠던 기억은 수압이 사라지자 죽었지.
마치 내가 당신을 내 몸에서 꺼내면 저렇게 황당하게 사라지는 당신처럼.

 

 

 

독일 하면 여러가지가 생각나는데 그 중 하나가 워커스다. 워커스 초반에 청년들이 모여서 사는 이야기하는 코너가 하나 있었는데 그 중 한 여자애가 특이했다. 어투 자체가 남달랐다. 알고보니 독일에 유학까지 했는데 집안 사정이 복잡해서 다시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그녀는 다시 독일로 가는 날을 꿈꾸고 있었다. 자주 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음에 생각나는 게 김정운 교수님. 독일에서 살다가 한국이 그리워서 오신 분으로 지금은 여러 저서들로 유명해지셨지만 내가 강의를 보러 갈 때만 해도 서울대 교수가 강의할 때보다 자리가 한산했다. 아마 자신이 미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교수를 했더라면 자신도 인기를 누리셨을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김정운 교수님은 쓴웃음을 띄셨다.

 맥주도 당연히 생각나는데, 사과맥주는 뜨끈하게 마셔야 제맛이다. 그거 마시고 나면 한국맥주를 한동안 잘 못 마실 정도로.

 허수경 시인은 이 시를 쓴 시기엔 독일로 일을 하러 떠나 있었다. 그녀가 쓴 시엔 확실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녀는 잠자리를 통해 고향을 들여다보기는 싫다. 투명하게 한국을 보고 나면 그동안 얼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매하고 무지몽매하고 잔인한 인간들인지 새삼 깨닫게 되서다. 대신 그녀는 나비를 보길 원한다. 그녀가 보고 싶어하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의 산천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바다에 수장된 지금도 그걸 보고 싶어하는 지는 의문이다.

 내가 황현산을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는 문체가 유려한 것도 있지만 시인의 의도와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의 평론을 쓴 자는 허수경 시인보다 레벨도 상당히 딸리고 허접하고 꼰대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쓴 시라 해서 다 정지용의 향수를 떠올리며 퉁치지 마라. 연애시, 서정시라고 치부하기에 이 시집의 메시지는 너무나 정치적이고 반가부장적이다. 까짓거 정부에 블랙리스트로 좀 적히면 어때. 부들부들 떨지말고 할 말 똑바로 하시길 바란다. 솔까말 광화문 시위 나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기억은 부담감을 내포하고 있지만 추억은 정말 아무 기대도 분노도 없기에 부담감은 없다. 그러나 감정까지 없다고 보기엔 힘들다.
낡은 건 마구 다루다가 무언가가 훼손이 된 상태이다. 그러나 오래된 건 말 그대로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써서 개인적으로 익숙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가치가 매우 상대적일 수 있다.

 

 그나마 제대로 된 평론가 이광호 씨가 허수경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걸 올리고 마지막으로 음악이 나오는 시를 올리겠다.

 

허수경은 토착적인 정서의 가락으로 세간의 고통을 감싸안은 감수성을 보여준 시인이다. (...) 허수경 시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세속적 삶의 남루와 비애를 끌어안는 '통속적인' 가락인데, 이것은 삶의 질곡과 타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모성적 감수성으로 표현된다.- <이토록 사소한 감수성> p. 283

 

풍장의 얼굴 중에서

아아 네 귀를 열어 엉뚱한 만화들을 집어넣을까 헤엄치는 집이 있는 해안을 지나 얼음이 녹아가는 북극에서 같이 녹아버릴까, 고 언듯 전광판을 바라본다

아직 아직은 아니에요
헐떡거리며 지나가는 버스를 보아요
난국의 테러리스트들이 전범의 손을 머리에 달고 저 버스를 폭파해버릴 거에요
인권 운동가들을 불 속으로 집어던져버릴 거에요
(...)
삶겨진 이파리들, 이빨을 단 이파리들, 이빨을 갈며 다 잡아먹어버릴거야!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뒷모습을 보이며 우는 이파리들

내 기타는 너를 먹고 유순해져요
내 기타는 9월이 지나야 잠을 깨지요
내 기타는 피아노와 함께 술을 마셔요
내가 취한 게 아니라 내 피아노가 취한 거,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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