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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에로틱한 찰리

에로틱한 찰리

찰리가 에로틱해도 되는 걸까 문장은 이어지지 않는다 플룻을 부는 여자의 입술처럼 플롯은 은밀하다 나는 찰리에 대해 생각한다 창문에서는 붉은 제라늄이 막 시들고 있다 찰리는 어떻게 됐을까 찰리에 대해 생각하기 전까지 나는 찰리를 몰랐다 그런데 찰리를 생각했고 찰리가 걱정스러웠다 찰리를 생각하기 전의 찰리와 지금의 찰리 사이에 무엇이 지나갔을까 카페의 테라스에서 여자가 플룻을 꺼낸다 나는 찰리를 생각한 내가 찰리이고 누구인지 몰랐던 찰리는 찰리 a이며 지금의 찰리는 찰리 b라고 구분한다 문제는 찰리에 대해 생각하다 찰리가 떠났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찰리 a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자 찰리 a는 찰리 b가 되었고 찰리는 빌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찰리에서 빌리로 옮겨간 것은 순간적인 일이다 붉은 입술이 플룻에 닿는 순간 찰리는 찰리 b가 떠난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자 찰리 a가 누구였는지 생각나지 않았고 나도 찰리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빌리가 왔다 세계를 잠시 해체하는 것 같은 느낌이 찰리와 빌리 사이로 지나갔다 나는 그것을 에로틱한 각성이라고 적어둔다 여자가 플룻을 가방에 도로 넣는다 플롯은 숨어 있다

 

 

 

오은 씨가 생각보다 평론을 얌전하게 하시는 건지 아니면 내가 이렇게 저렇게 멋대로 상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내 상상이 현실이라면, 여성민 씨의 시는 퀴어로 분석할 수 있는 시들이 굉장히 넘치는데 그걸 캐치를 못하셨는지 일부러 외면하셨는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예를 들면 유리병이란 시에선 감자를 깎는 언니와 언니를 이해하기 위해 사라지는 계단을 뛰어내려가 지하실로 내려가는 동생을 보자. 그녀는 '언니를 괴롭게 한 어떤 사건'을 엿보고 유리병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근데 그 시 바로 다음에 장미 통신이라는 시가 나온다. 등을 앞으로 하고 거꾸로 걸으면서 장미에 대해 알리는 시인데(왠지 진실은 미라인 듯하다) '걱정하지 마 근친은 많고 우리는 지하실처럼 안전해'라는 구절이 나온다. 왠지 자매간의 근친 GL 로맨스가 떠오르지 않는가? 스미스 부인이라는 시에선 스미스가 하는 일은 무조건 따라하는 부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왠지 스미스와 웨슨의 관계가 수상하다. 스미스가 웨슨의 방에서 나온 뒤 스미스 부인이 웨슨의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스미스 부인이 웨슨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사람들의 눈에 수상한데 스미스가 웨슨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수상하지 않다. 그리고 스미스가 총을 쏘길 좋아하는 상당히 마초적인 성격임을 증명하는 부연설명이 나온다. 보라색 톰이라는 시를 봐서 알겠지만, 매니큐어는 여성이 바르는 전형적인 화장품인데 그걸 싣고 가는 건 군함이다. 가장 마초적이면서도 가장 동성간의 애증(?)이 절절한 게 해군이다. 이 시 전체의 세계를 보건대,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무튼 스미스 부인은 스미스와 웨슨 둘 다를 죽여버린다. (지금 보니 웨슨은 죽었는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시집의 주제인 불분명성과 실패를 의미할 것이다. 스미스 부인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을 좋아했다면 둘 다 죽이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동성애, 근친, 친족살인 등 금기를 주제로 하여 쓴 이 시는 그러나 지극히 기독교적이다.

 

 이 시의 후기를 써준 오은 시인이 자신의 사건사고를 가지고 말장난을 치면서 즐기는 걸 전제로 한다면, 여성민은 자신의 목소리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고독과 어둠을 직접적으로 시 속으로 드러낸다.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 단지 그 비애에 상당히 원시적이고 발랄한 색을 입혔을 뿐이다. 그렇다고 껍데기 포장을 잘 했다는 말도 아니다. 아예 벽돌로 벽을 세우고 건축을 한다. 다만 거기엔 식탁에 수저를 박는 등 말도 안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만 서대경 시인의 시를 읽은 지 한참 지나 그 시 안에 이런저런 철학이 표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과 달리(지금 생각하면 특히 니체 쪽이 많았다.), 여성민 시인이 어떤 철학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금방 보여서 아쉬웠다.(구조주의 쪽과... 시와 책 이름을 통째로 언급하게 될 것 같아서 다른 건 생략하겠다. 도넛과 관련되어 있다.) 이미 충분히 난해하고 구조를 타파하는 시를 쓰고 있으니, 다음에는 더 깊은 시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몇몇 시는 두번째로 본다. 신춘문예인가 젊은시인가에서 이 분의 시를 보고 너무나 인상이 깊어서 책까지 사서 봤다. (특히 시애틀.) 다시 봐도 좋은 시들이었는데 의외로 새로 본 보는 시들이 훨씬 좋았다. 평론가들이 뭐라고 했던간에 난 이 시인에게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건축

이언 커티스는 죽을 듯이 노래를 불렀고

죽었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던 몸부림은 벽이 무너지는 순간을 닮았다

벽이 사라졌다고 생각해보자 계단은 한 그루 나무가 된다 광폭하고 슬픈 소리를 품고 있지만 이 나무로는 기타를 만들 수 없다 스르르

나무에서 내려오는 뱀처럼 내가 콧노래를 부르며 떨어진다

벽돌을 던지며 안녕

방금 죽은 새처럼 붉고 단단하네 이륙하기 위해 벽돌은 건축을 택하고 편대비행을 시도하려 방마다 라디오를 켜네 벽이 투명해졌다고 생각해보자 목에서 금발의 전류가 발생하는

커트 코베인은 죽을 듯이 노래를 불렀고

죽었다 목이 부러진 기타로는 아름다운 정원을 세울 수 없었다 뱀은 나무 아래 모자처럼 앉아 있다 더 많은 모자를 던지며 안녕 붉고

선지 같은 벽돌들아 안녕 아픈 뱀이 모자 안으로 들어간다 아스피린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제 모자를 너에게 준다 모자는 당장 슬픔을 배운다

기타에 나무에 정원에 아스피린이 쌓인다 계단에 복도에 아스피린은 하얗다

재니스 조플린처럼 못생긴

내부에 하얀 벽의 거리가 생긴다 한 주먹 아스피린이 물에 녹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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