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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위대한 개츠비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으리라. 그 꿈이 이미 그의 뒤쪽에, 공화국의 어두운 벌판이 밤 아래 두루마리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저쪽의 광막하고 어두운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꽂혀서 읽었는데 이 책에서도 인간이 30세가 되면 인생에 석양이 진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데 슬픔이 느껴진다. 아무리 사람의 수명이 연장되고 삶의 시작은 50대부터라고 힘을 주어 강조하지만 확실히 30살 이후부터는 젊음을 유지하려면 교육과 과학의 힘을 받아야 하는 게 맞는 듯하다.

 

 초반에 등장했던 마피아의 보스같은 노인이 '젊은이는 젊은이들끼리 스포츠나 젊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나 하게.' 라고 말할 때 얼마나 경륜있고 슬퍼보였는지. 그가 자랑할 건 이제 힘이나 권력이 아니라 인간의 어금니를 단추로 한 정장이나 과거에 동료가 총맞아 죽은 걸 목격했던 이야기밖에 없는 것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지만 데이지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뒀으며(데이지가 철이 없어서 아이는 완전히 뒷전이긴 했지만 굳이 아이를 옷까지 갈아입혀서 개츠비 앞에 데리고 온 건 역시 본능적인 거절의 의사였긴 했지.), 이전부터 서서히 톰의 종노릇에 길들여져 있긴 했지만 모종의 사고 이후엔 완전히 속물이 되어 버렸다.

 옛날에 이 책을 집었을 때 개츠비와 데이지의 로맨스에 압도되었다면 이번에 압도된 것은 거물도 벼락부자도 아닌 신종인류 개츠비가 기존 보수들에게 당하는 온갖 모욕이었다. 주인공이 안타까워하는 점이 언뜻 이해가 되었다. 그는 개츠비가 톰과 데이지에게 그런 무시와 모욕을 받더라도, 다시 그에게 어울리는 진보적인 사상을 지닌 여성을 찾고 계속 그의 상상력을 펼쳐나가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개츠비는 자살을 택한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언뜻 그 자신의 실패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정신 이상자와 결혼하면 안 된다는 법칙은 없지만, 내가 그 정신 이상자를 고쳐보겠다는 오만을 지닌 채 결혼하면 그 생활은 반드시 실패한다. 그는 이 책을 읽는 (가족 아닌)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책에 숨어 있는 혁명의 메시지를 깨달아 주길 바랬던 게 아닐까. 그러나 인류 종족을 번식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띈 사랑이 너무나 강력하다. 욕망의 단계를 뛰어넘는다는 게 참 어렵지.

 솔직히 개츠비의 집도 아깝다. 진짜 책이 그렇게 많이 꽂혀있고, 일반인을 위한 잡학 지식 책들 위주라지만 아무튼 알짜배기들만 있는데다가 깔끔한 잔디가 있는 넓은 정원. 이건 뭘 의미하겠는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정원에 나와서 토론하는 거다. 그것도 술을 마시고 재즈의 역사에 대한 음악을 들으면서 즐겁게. 미국에선 왜 그렇게 못했을까?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황무지에서 사느라 그렇게 빠듯했었나? 그렇게 보면 게르만 족들도 얼마나 힘들었을텐데? 사람을 제압하는 듯한 그런 유쾌함을 지녔으면서 왜 그 유쾌함으로 유럽의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지식에 칼을 댈 생각을 못한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자본주의가 그렇게 강력한가?

 위대한 개츠비 보면서 그나마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이걸 이야기하는 개츠비 친구에 대한 내 생각이다. 아무리 그 사건 일어나고 나서 개츠비 자살하기 전까지 개츠비를 존경하게 되었다곤 하지만 장례식 겁나 성대하게 해줘 ㅋㅋㅋ 죽을 때에나 잘해주지 말고 살 때 잘해줘 친구들아 ㅎㅎㅎ 죽을 때도 잘해주는 친구들이 있을까 의문이기도 하다만 ㅠㅠ

 

 또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세상을 오래 살려면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너무 천천히 걷다가도 결국 나이를 먹으면 어차피 쓸데없는 오만과 자신감이 생겨서 막 나가기는 하다. 하지만 여러 인물상들을 보건대, 자신이 전적으로 옳고 나머지는 다 '개인사'라고 보면 수명이 짧아지는 듯하다. 앞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제 갈길 가는 중인데 거기서 전력으로 달리면 크게 부딪쳐서 죽거나 죽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난 조심하지 않을 거지만 ㅎㅎ 요리조리 싹싹 비켜나면 빨리 달려도 사고는 안 나더라..

 난 새움의 말에서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형씨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쓸까? 그것도 암흑세계에서 그렇게 얌전한 말을? 차라리 'old' sport에서 과거를 추구하는 개츠비의 성격을 유추하여 '이보게'같은 고리타분한 단어를 쓰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어떤 번역들은 상당히 읽기가 불편했다. 민음사의 번역은 어차피 수정될 때가 되었었다. 그 증거로 지금은 창비에게도 문학동네에게도 밀리는 출판사가 되지 않았던가. 이정서가 번역한 문장이 더 아름답다는 건 아니지만 젊은 세대들이 읽기에 훨씬 편하고, 기존 출판사 편을 드는 수많은 사람들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미 죽고 없지만 그가 독자를 광범위하게 설정해놨고 따라서 읽기 쉬운 문장을 선호할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리고 개츠비는 정말로 위대하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그걸 의도했다. 그것까지 부정한다면 우리나라 출판사가 상업자본주의의 흐름으로 간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개츠비가 위대하지 않아 보이면 그냥 책도 읽질 마라. 감상은 자유지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저자의 진정한 의도를 왜곡하는 건 앞으로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 해로운 짓이다.

 

 http://vasura135.blog.me/220998169943->민음사판 하나에서 발췌했지만 위대한 개츠비엔 저자의 성장배경에 대한 설명이 특히 많다는 느낌을 주었다. 인상적이었던 설명들만 뽑아서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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